DSLR 카메라 렌즈가 고장나서 시그마 렌즈 고객센터에 다녀왔다.

지난번 민둥산 캠핑 갔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도중에도 약간 무리해서 DSLR을 들고 다녔더니, 집에 와서 이리저리 말리고 청소하고 정비를 해도 렌즈(Sigma 17-70mm 1:2.8-4.5)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가 결국 완전히 고장나 버렸다.

몇달 전부터 줌인/줌아웃(줌링)의 움직임이 부드럽지 못하고 가끔씩 줌 돌릴 때 걸리는 현상이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고장날 때가 되긴 했다. 캐논 450D를 팔고, ‘남자는 니콘’이라며 세계최초로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니콘(Nikon) D90으로 갈아탄 것이 2009년 2월이었고, 시그마 17-70mm F2.8-4.5 렌즈도 새 DSLR 구입과 동시에 사용했으니까 이제 8년차(정확히는 7년 8개월)가 되는 구형 DSLR과 구형 렌즈의 조합이다.

이 DSLR을 들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전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육해공을 넘나들며 사진 수만장을 찍으며 추억을 기록했다. 그 과정에서 좀 험하게 다룰 수 밖에 없었던 상황도 많았고 이리저리 기스도 많이 났다. 그래도 그동안 기대 이상으로 오랫동안 잘 버텨준 것 같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그래서 나는 명품이라고 생각한다.

용던(용산 던전)내의 작은 용던. 용산 전자랜드.

용던(용산 던전)내의 작은 용던. 용산 전자랜드.

아무튼 DSLR 렌즈 A/S를 받기 위해 목적지인 용산 전자랜드로 갔다. 카메라 하면 역시 전통적으로 남대문 쪽이 유명하고 집에서도 더 가깝지만 역시 나는 용산파라 용산이 제일 편해서 그곳으로 갔다. 용산 전자랜드 신관에는 여러 회사들의 A/S센터가 밀집해 있는데, 내가 가려는 시그마 고객센터 역시 신관 121호에 위치해 있었다. 용산 자체가 던전이다 보니 전자랜드 갈때마다 이리저리 미로 속을 헤매다가 돌아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 나의 느낌 탓이다. 물론 신관/본관 가는 길 안내 자체는 꽤 잘되어 있는 편.

노란색 니콘 간판

시그마 고객센터의 자리에는 니콘 고객센터가 있었다.

시그마 렌즈 고객센터에 왔는데 그곳은 니콘(Nikon) 고객센터였다. 혹시 잘못 온 것 아닌가 싶어 밖에서 간판을 유심히 다시 살펴보고 시그마 간판도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에 들어갔다. 니콘 고객센터가 시그마 고객센터를 함께 겸하고 있었다.

니콘 고객센터의 모습. 시그마 고객센터 이기도 하다.

니콘 고객센터의 모습. 시그마 고객센터 이기도 하다.

들어가서 고장 증상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무상 수리 기간은 이미 백만년 전에 끝났기 때문에 나의 관심은 수리비가 얼마쯤 나올 것인가 하는 것이었는데, 문득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렌즈 수리 비용이 렌즈 새로 사는 것만 못해서 수리를 포기하게 되더라도 수리 견적 금액을 파악하는데 1만5천원의 비용이 든다는 것이었다.

내 렌즈(시그마 17-70mm 2.8-4.5)는 새제품으로 살 때 가격은 50만원 정도 되었지만, 나중에 신형 모델(Sigma 17-70mm 2.8-4.0+손떨림 방지 기능(OS))이 나오면서 단종되고 퇴물이 된 상태다. 중고 가격은 무서워서 차마 확인을 못했다.

만약 수리 비용이 10만원 넘게 나오면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오래된 스마트폰도 액정 수리비가 20만원씩 나오면 그냥 수리를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낫듯이 말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 만오천원이 소모된다는 사실은 꽤나 낯설었고 그래서 판단하기 어려웠다. 3분간 고민하다가 결국 수리를 진행하기로 했다. 고물 렌즈이지만 그동안 정이 너무 많이 들었다. 죽은 아이 살리는 마음으로 최대한 고쳐볼 때까지 고쳐보는 것으로 마음을 굳혔다.

수리 기간은 열흘 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원래 다음주에 제주도 갈 때 가져가려고 이번주에 여유롭게 수리받으러 간 거였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길 조짐이 보였다. 그동안 내가 엘지 삼성 같은 한국의 서비스센터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라고 생각하던 찰나 전화가 왔다. 아까 열흘이라더니 3시간만에 전화 온 것에 흠칫 놀랐다. 비용은 7만5천원인데 수리를 할 의사가 있는지 물어왔다. 수리 비용은 정말 애매한 가격이라 버리기도 취하기도 어려운 가격이었다. 30초간 전화기를 붙잡고 고민하다 결국 수리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이제 낡아서 더이상 안쓰게 되더라도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태로 보관하고 싶었다. 병든 자식 살리려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건가. 게다가 놀랍게도 월요일날 렌즈를 찾으러 오라고 했다. 평일이었으면 하루만에도 가능할 뻔 했다. 이런 신속한 광속 서비스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며 매우 흡족해졌다. 제주도에 갈 때 DSLR을 들고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푼 채…

수리가 완료된 D90 + Sigma 17-70mm 렌즈

수리가 완료된 D90 + Sigma 17-70mm 렌즈

월요일날 갑자기 면접이 잡혀서 제주도 여행 계획은 취소되었고, 결국 월요일에 찾으러 가지는 못하고 이틀 뒤에 시그마 고객센터를 방문해서 렌즈를 받았다. 그리고 깨진 필터도 제거했고, 카메라 청소도 같이 받았다. 그렇게 정든 낡은 렌즈를 수리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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