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가위눌림 체험기.

드디어 나도 가위에 눌려 보았다.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각종 문서들도 읽어보곤 했지만, 막상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미지의 세계. 그것을 나도 오늘 새벽에 경험하였다. 그래서 이 생생하고 진귀한 체험이 점점 기억에서 희미해지기 전에 글로 남겨놓으려 한다.

종종 그러하듯이 어제 저녁에도 술한잔 마시고 잠들었다. 그러다 새벽에 문득 눈을 뜨니 두명의 존재가 내 앞에 보였다. 한명은 상체만 모습을 드러내었고, 가운데 가슴쪽에 하얀 빛을 발했다. 또 한명은 검은색 다리만 보였다가 마지막에 고개를 내밀었다.

왼쪽에는 다리만 보이고 오른쪽에는 상체만 있고 그 가운데 하얀 불빛이 있다.

생각나는대로 그림판으로 급히 그려본 가위눌림 몽타주.

내가 느꼈던 가위눌림 증상의 특징

악의적인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다

여러 경험자들의 진술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역시 어떤 악의적인 존재가 보였다. 영문 위키피디아에서는 malicious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꿈에서는 악의적인 존재도 나오지만 천사같은 존재도 나오고 예쁜 여자도 나오고 외계인도 나오고 별의별 것들이 다 나오지만 가위는 그렇지 않다. 던전에 들어가면 몬스터만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눈을 떴는데 눈앞에 뭔가 있으니 굉장히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꿈속이었으면 짱돌이라도 들고 싸웠을텐데 가위이다 보니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입으로 뭔가 외치려고 했는데 말도 안나오는 것 같고 몸도 움직여지지 않으니 답답했다. 마치 오버워치 하다가 거점 점령하고 적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마침 마우스와 키보드가 고장난 느낌이랄까. 아무리 마우스를 휘저어도 커서는 꿈쩍도 안하고, 그 사이에 적이 내 앞으로 다가와 공격하고 있고 그런 상황인 것이다. 아무튼 그 와중에도 이것이 가위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동안 숱하게 들었던 메뉴얼대로 손가락이라도 움직여서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가위 초보 입문단계라 그런지 그것도 잘 안되고 그래서 그냥 아몰랑 이러면서 가만히 있었다. 이거 언제쯤 끝나려나라는 생각이 들던 찰나 문득 모든 정신과 기운이 온전해지면서 가위가 풀렸다. 시간으로 치면 30초쯤 되었으려나.

가위의 등장인물은 꿈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아마 가위눌리기 직전에 꾸었던 꿈의 내용과 스토리상 연결되어 있는 어떤 존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꿈에서 깨어나면 꿈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눈뜬 직후에는 그렇게 생생하던 꿈들이 현실세계에 로그인한지 15분이 지나면 이미 전생의 일처럼 까마득해진다. 드라마틱한 꿈 많이 꾸는데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일이다.

등장인물의 모습들은 방안의 실제 사물과 연결되어 있다.

책상 밑의 컴퓨터 데스크탑 모습

평범하기 짝이 없는 방의 모습. COX AG 200X 케이스의 팬에서 하얀색 LED가 빛을 발하고 있다. LED 끄고 싶은데 끌 수가 없다.

눈을 뜨면 보이는 방안의 실제 모습이다. 옆에 의자가 있고, 컴퓨터 팬이 돌아가고 있다. 자고 있을 때에는 방안의 불은 꺼져 있었고, 컴퓨터는 켜져 있었기 때문에 케이스 팬의 LED와 의자의 그림자만 어렴풋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위의 등장인물 생성에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인다. 오른쪽 컴퓨터의 팬LED는 가위 속에서 아이언맨 아줌마의 불빛이 되었고, 왼쪽 의자는 다리맨이 앉을 수 있는 쉼터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가위눌림은 증강현실(AR) 비스무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포켓몬고 같은…

공간감각이 꽤 뒤틀어진 느낌이었고, 화질이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실제 방안의 사물들과 내 눈과의 거리는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가위눌림 속에서는 꽤 거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3~4미터 정도? 그리고 컴퓨터 본체 뒷쪽은 벽인데 가위 속에서는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무한대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손으로 만져질 것 같은 실체감이 없었다. 홀로그램이라고 하기에는 홀로그램한테 미안하고, 구글 카드보드 VR 어플에 보면 극장에 앉아서 2D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시네마 모드가 있는데 약간 그런 느낌에다가 증강현실(AR)을 결합한 것 같다랄까. 한마디로 해상도가 떨어지고 그래픽도 좋지 않다는 뜻이다. 게다가 가위눌림은 그것보다도 훨씬 희미하고 윤곽도 분명하지 않았다.

한여름밤의 찰나의 경험을 마무리하며…

아무튼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를 눌리게 되어서 기분이 묘하다. 돈주고도 할 수 없는 경험을 드디어 하다니 인생 오래살고 볼 일이다. 이것도 나름 첫경험인데 좀 더 만끽할껄 하는 생각도 들지만, 처음이라 많이 놀란 것도 있고, 등장인물들이 계속 바라보고 싶을만한 비주얼도 아닌 데다가, 꿈처럼 뭔가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전개되지도 않아서 그냥 재미없는 게임 시스템종료하는 마음으로 빠져나오고 싶었다. 다음에 또 가위가 눌린다면 좀 더 오래 있으면서 자세하게 관찰해 보려 한다. 아무튼 2016년 8월 18일 새벽2시 40분경에 있었던 일이다.

2 thoughts on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위에 눌렸다. 가위눌림 체험기.

  1. ㅋㅋ

    신기하게 귀신들이 항상 새벽 2-3시 사이에 나오더군요 전 가위 눌렸을대 거의 정확히 새벽 3시마다 나오더라구요

    Reply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