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트라이앵글과 89년생

우연히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동영상을 알게 되었다. 이미 그 바닥에서는 꽤 유명했던 동영상인것 같았다.


죽음의 트라이앵글 [▲죽음의 트라이앵글 동영상]

내용인즉,2008학년 입시부터 수능,논술,내신이 모두 전형에 포함되어서 학생들의 부담이 가중되었고, 그에 따른 수험생의 고난과 울분을 나타내고 있는 내용이었다. 죽음의 삼각형(트라이앵글)은 각각 수능,논술,내신을 상징하였다.

원래 수험생이라는 것 자체가 이리저리 스트레스다. 특히 피끓는 10대에 말이다. 늙어서 잠안올때 공부할 수 있다면 오죽 좋을까?

언젠가,요즘은 수능을 안치고도 대학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서는 ‘요즘 고등학생들 대학하기 편하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결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실 수험생 당사자나 수험생을 둔 학부모의 입장이 아니라면, 수능시험은 마치 페루 대통령 선거처럼 머나먼 일이 되어서, 시험일조차 언제인지 잘 모르고 살게 된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1996학년도에도 수능,본고사,내신 모두 전형에 포함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수능이 막 정착되어 가던 시기여서, 본고사가 생겼다가 그 다음해에 갑자기 사라지고,대신에 수능이 400점으로 늘고,갑자기 어려워 지는 등, 입시제도가 춘추전국시대마냥 혼란스럽고 우왕좌왕 하던 시기였다.

그때의 생각으로는 10년후인 2000년대 중반쯤에는 수능도 완전히 정착되고,사교육비도 줄어들고,무너져가는 공교육도 일으켜세우고 진짜 그럴 줄 알았다. 창의력 억제와 사교육비의 원흉이라고 지적받았던 학력고사가 폐지되고, 대신 미국 SAT를 본따서 만든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다. 우리 세대는 단지 그 제도의 과도기에 있어서,어쩔수 없는 제도상의 피해를 본 것일 뿐, 우리 다음 세대부터는 입시부담도 없고,창의적인 교육을 받으며,십대의 꿈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꺼라 생각했다. 설마 89년생(당시 국민학교1학년)이 2006년에 자신들을 저주받은 89년생이라고 부를꺼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은 진짜로 흘러버려서 2006년이 되었고,89년생은 고등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교육비 이야기가 나오고,공교육은 피사의 사탑마냥 늘 무너진다는 말만 들으며,또한 입시제도는 계속 바뀌는 중이다. 10년동안 무얼 한걸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2020년 쯤에도 고등학생은 여전히 아침 07시30분까지 등교하며 하루하루 입시지옥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며,밤늦게까지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해야 할 것이라는 것. 또한 입시비관으로 자살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2020년에 대학에 입학하는 사람은 현재 7살 유치원생인 2001년생이다.

그들이 성인이 되는 2020년 무렵에는 우주를 무대로 한손에는 레이저 총을 들고,머리에는 헬멧을 쓰고,우주의 평화를 위해 침입자와 맞서 싸워야 할 것 같지만(분명 2020우주소년 원더키디미래소년 코난 같은 만화에서는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다), 달나라로 수학여행갈것 같던 2006년의 고등학생도 저주받은 89년생이라며 수학정석 가지고 씨름하는 마당에 2001년생도 특별히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인터넷 동영상 대신에 죽음의 쿼드앵글-저주받은 2001년생이라는 3차원 홀로그램이라도 나오려나?

여하튼 나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결론을 내렸다. 입시제도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이 인생을 결정하는 사회구조상 이러한 입시지옥은 절대 멈출수 없다. 결국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자고 하는 짓인데,당연히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89년생들이 이전에 비해 다소 혼란스럽게 될 것은 분명하지만, 입시제도가 혼란스러워서 대학입학에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축구경기 도중 폭우가 쏟아져서 경기에 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우리편만 아니라 상대편도 똑같이 수중경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환경에 덜 구애받는 팀이 다소 유리하다는 것 뿐,누구에게나 똑같이 불리하다. 조금만 더 잘 참는 놈은 이기는 거고,그렇지 못하면 나가 떨어지는 것.

결국 입시혼란 속에서 누군가는 득을 보고,누군가는 또 그만큼 손해를 보겠지. 인생은 제로섬게임이니깐.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또다시 취업경쟁에 뛰어들고,결혼을 하고,생활전선에 뛰어들고,뭐 그렇겠지.

역시 사람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고,앞으로도 똑같을 것 같다. 그래도 누가 군대갈래 고3할래 물어보면,나는 주저없이 고3을 선택할 것이다.

2 thoughts on “죽음의 트라이앵글과 89년생

    1. 이추 Post author

      반갑습니다.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을테니 죽음의 트라이앵글도 추억속의 이야기 일 것 같네요.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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