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를 나카노 쪽으로 변경하고 나카노를 본거지로 움직이게 되었다. 나카노는 이제 나와바리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낯익게 되었다.
나카노역(中野駅)은 서울의 회기역 정도의 느낌인데 나름 꽤 복잡한 전철 역이다. 다양한 노선의 전철이 다니기 때문에 노선과 방향을 잘 확인하고 타지 않으면 길을 잃기 쉽상이다. 방향을 잘 확인한다고 해도 ‘니시후나바시’ 라든가 ‘나카메구로’ 라든가 다들 그 이름이 그 이름 같아서 이미 여러번 헤맸다. 한번은 반대방향으로 잘못 탄 적이 있어서 내린 뒤 맞은편 열차를 탔는데 여전히 아까 잘못탄 그 반대방향으로 계속 가는 미스테리한 곳이다. 마치 내리실 문은 없습니다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역에 무사히 내리면 바로 나카노 브로드웨이가 펼쳐진다. 오늘은 역에서 나오자마자 역앞 광장에서 어떤 분이 사뭇 진지한 어조로 뭔가 웅변을 하고 있었다. 원래 거기는 컨택트렌즈 아큐브 알바생이 홍보활동을 하는 곳이었는데 오늘따라 뭔가 전혀 다른 포스를 풍기는 분이 계시니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처음에는 정치인이 지하철역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줄 알았다. 요즘 일본이 선거철 이라서 동네 곳곳에 후보사진들이 붙어있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니 예수그리스도를 외치고 있었다. 그제서야 기독교 포교 활동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 명동에 가면 4개국어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데 일본 도쿄에서는 오직 일본어로만 씌여진 문장을 내걸고 일본어로만 웅변을 하고 있었다.
한국 길거리에서였다면 천국이고 지옥이고 그냥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쳤겠지만, 머나먼 이웃나라 일본에 와서는 기독교 선교하시는 분 앞에서 계속 구경을 하였다. 왜냐하면 이런 것이 일본에도 있는 줄 몰랐기 때문에 신기하고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아무튼 그분은 막 내일 지구종말이 올 것 처럼 큰 소리로 뭔가를 외치다가 가끔씩 노래도 부르곤 하였다. 옆에 있는 분들은 그냥 계속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한국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가까이에 가서 그 분이 들고 있는 일본어 팻말을 자세히 보았다. 일본어를 모르고 약간의 한자와 히라가나,카타카나 글자만 읽을 수 있는 나조차도 천국(天国)과 지옥(地獄)이라는 단어가 확실히 보였다. 그리고 카나가나로 예수그리스도(イエスキリスト)라고 되어 있었다.
信じれば라고 씌여있는 걸로 보아 믿으면 천국인 것 같았고 信じないと라고 되어 있는 걸로 보아 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간다는 것 같았다.
결국 인터넷으로 그 일본어 문장 전체를 입력해 보았다. あなたの 身代わりに 十字架上 で死なれ 復活された 神の子 イエスキリスト 信じれば 天国 信じないと 地獄 인데 구글 번역기를 돌려보니 ‘당신을 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이라고 나왔다. 역시 예상한 대로였다.
일본어 사전에서 信じれば를 검색해보면 기본형인 信じる가 나오고 친절하게 동사변형도 나온다. サ행변격 타동사, 상1단 타동사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기왕 칼을 뽑은 김에 그게 무엇인지 찾아 보았다. 역시 외국어는 현지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덕분에 또하나의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다.
아무튼 개신교 인구가 꽤 많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도 역시 많은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이 꽤나 흔한 풍경이긴 하지만 일본에는 기독교가 발달하지 않아서 이러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모습이 일본인들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거의 사이언톨로지 같은 느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토쿄 시민들은 여성전용칸에서와 마찬가지로 태연해 보였다.
문득 내가 일본에서 이렇게 신기하게 구경하듯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한테도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꽤나 흥미로운 관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서울 명동에서 4개국어로 된 팻말을 들고 있던 분들이 참 글로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일본 여행의 최대 매력은 한국에도 있는 것이 일본에도 있고 일본에도 있는 것이 한국에도 있으면서도 서로 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낯선 듯 낯설지 않은 이 곳,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