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제주 우도를 헤매다 우연히 들어간 제주 우도 쉼팡 게스트하우스에서 아늑한 하루를 보냈다.

비양도를 떠나 무서운 바람소리를 들으며 빗속을 뚫고 그렇게 우도 천진항으로 도착했다. 만약 안되면 배가 출항할 때까지 대합실에 앉아 버틸 생각이었다. 마치 공항 노숙자처럼 말이다.

하지만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주위는 바람소리 외에는 한없이 고요할 뿐이었다. 계속 주변을 서성이다 보니 근처 레저스포츠 가게의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셔서 오늘 배가 안뜬다고 하셨다. 하루종일 결항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비록 비바람이 몰아쳐도 오후에 날씨가 좋아지면 다시 배를 운항 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막막해졌다. 시각은 아침 8시 반. 바람은 세차게 불고 날씨는 춥고 가랑비에 몸은 젖었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몇 시간 동안 추위에 떨다가 겨우겨우 번화가인 천진항으로 돌아왔는데 이곳에서조차 갈 곳이 없다니, 도대체 나는 언제쯤 거대한 문명의 대륙 제주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바다건너 바로 눈 앞에 제주대륙이 보였건만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저 멀리 성산일출봉도 마치 오아시스 신기루 같았다.

그렇게 천진항 주위를 배회하다가 문득 바로 앞에 있는 ‘우도 올레 쉼팡 게스트하우스’안의 사무실 같은 공간에서 주인 분이 노트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뭔가 인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치 산속을 헤매다 저 멀리 불빛을 바라 봤을 때의 반가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입구 앞에는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분께 오늘 배가 끊겨서 그러하니 지금 체크인 가능하냐고 사정했더니 흔쾌히 수락하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쉼팡 5호실로 안내를 받았다. 마치 조난 당하다가 구조받은 느낌이었다랄까.

쉼팡 5호실의 모습

10인실 방이었는데 크기가 딱 알맞았다. 좁은 공간에 침대만 우겨넣은 것이 아니라 가운데에 짐을 풀어놓거나 사람들과 모여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따뜻하고 아늑하였고 편백나무 향이 가득한 깔끔한 방이었다. 그리고 그 방에는 나 혼자였다. 배가 결항이었으므로 당연히 손님이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숙박비 2만5천원을 지불하고 바로 방 안에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전에 비양도에서 빡친 마음으로 급히 대충 쌌던 텐트와 침낭도 함께 펼쳐 놓았다.

폭풍우 때문에 부랴부랴 대충 쑤셔 넣었던 짐들을 펼쳐 놓고 정비를 하였다.

그리고 천진항 대합실에서 노숙하면서 먹으려고 우도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구입한 우도 땅콩막걸리도 한병 마셨다. 추운 우도 비양도에서 몇시간동안 떨다가 이렇게 따뜻한 곳에 오니 금방 나른해지고 졸렸다.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창 밖에는 태풍과 같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렸다.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잠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덧 늦은 오후였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다. 저녁에 바베큐 파티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그 시각마저 살짝 지났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식당(혹은 사무실) 쪽으로 가서 오늘 저녁 식사가 어떻게 되는지 물어 보았다. 풍랑주의보 때문에 배가 결항이라 숙박 손님이 없어서 바비큐는 취소되었고, 대신에 자체적으로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동참하겠느냐고 해서 스탭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심야식당 같은 느낌의 식사 공간. 바베큐 파티는 다른 건물에서 한다고 한다.

날은 어느덧 어둑해 졌고 창 밖에는 여전히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고 거센 바람소리가 들렸다. 같이 식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침에 뵀던 사장님은 사실 이 게스트하우스의 장기 숙박자 분이셨다. 전 세계 여행에 관한 엄청난 내공을 쌓으신 여행작가 분이셨다. 그리하여 요리가 전공인 젊은 스탭 한 분과 여행작가님과 그리고 발묶인 여행객인 나 이렇게 세명이서 아늑한 식당에 앉아 창밖의 폭풍우 소리를 들으며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밤늦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도 쉼팡 게스트하우스에서의 밤은 이렇게 깊어간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밤늦은 대화. 그동안 다른 여러 게스트하우스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적당한 남녀 비율로 섞여 밤새 떠들썩하게 즐기는 바베큐 파티도 무척 좋았지만, 이렇게 배가 끊긴 한적한 우도의 어느 게스트하우스에서 각각 다른 연령대의 남자 3명이서 조촐하게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꽤나 의미있고 좋았다. 여행지에서 배가 끊긴 특수한 상황에서 겪은 경험이다 보니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더더욱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우도 천진항의 모습.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정말 기적처럼 날씨가 화창하였다. 그저께 그랬던 것처럼 유람선에서 무수한 관광객들이 내렸고, 천진항 대합실도 오픈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맑은 날의 우도는 마치 장날처럼 활기찬 분위기였다. 천진항 대합실의 TV에서는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상황이 방송되고 있었는데, ‘힐러리’가 당선될 것이라는 그동안의 예상과는 달리 ‘트럼프’가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예측이 나와서 술렁이는 분위기였다.

우도 천진항 대합실 티비에서는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과반수 270명에 트럼프가 힐러리를 꽤 큰 차이로 앞서고 있다.

햇살이 비치는 맑은 날 아침의 모습. 저 멀리 여행작가님이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튼 배가 정상적으로 운행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후, 게스트하우스에서 조식으로 라면 한그릇을 먹은 뒤 우도를 천천히 둘러 보기로 하였다. 배 뜨자마자 당장 돌아가겠다던 전날의 굳은 결심은 너무나 화창하고 아름다운 우도의 날씨를 보니 싸그리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짐을 게스트하우스에 맡겨 놓은 채, 충전한 전동휠을 타고 해변을 따라 우도를 돌기 시작했다.

우도 쉼팡 게스트하우스 마당의 모습. 집 건물 4채가 모여 하나의 게스트하우스를 이루고 있다. 내가 묵었던 곳은 왼쪽의 빨간 지붕 건물이었고, 안에 샤워실과 화장실이 별도로 있었다. 화장실에는 비데도 있었다.

건물 한쪽에는 스넥코너가 있었는데 맑은 날은 여기서 낮술하면서 햇살을 즐기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극기가 휘날리는 우도쉼팡의 모습.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제주 우도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오게 된다면 꼭 한번 다시 들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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