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新宿)를 배회하다가 기왕 온김에 기념으로 뭔가 먹고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근처 음식점을 찾아 보았다.
레이다를 돌려서 찾아보니 전통스런 느낌이 가득한 옛날 거리에 일본라멘 전문점이 있었는데 꽤나 평이 좋았다. 그래서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골든가이(ゴールデン街)라는 지역이었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뒷골목의 옛흔적이 남아있는 곳 같은 느낌이랄까. 뭔가 일본 특유의 정취가 느껴지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런 곳일수록 길이 구불구불해서 오히려 찾기 힘들다. 원래 여행은 그런 법이다.
어찌어찌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긴 했다. 스고이 니보시라멘 나기(すごい煮干ラーメン凪)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여기가 맞는지 문앞에서 헤맸다. 위의 간판에 나기(凪)가 이 식당의 이름이다. 안에 들어가보니 내부가 생각보다 매우 좁아서 10명이 채 다 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곳일 수록 숨은 맛집인 경우가 많긴 하다. 어쨌든 내가 갔을 때에는 평일 오후5시라서 다행이도 줄은 서지 않았다.
나기(凪,Nagi)식당 내부의 분위기는 진짜 심야식당에서 보던 일본 전통 느낌의 작은 음식점이었다. 그리고 라디오에서는 알 수 없는 일본어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늑한 곳이었다.
아무튼 주문을 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음식점에서 뭘 주문해야 할지 모를 때에는 맨 위에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스고이 니보시라멘(すごい煮干ラーメン)을 주문했다. 가격은 1100엔. 어제 코코이치방야(CoCo壱番屋)에서 카레덮밥 먹느라 좀 무리를 했지만 오늘도 역시 무리하기로 했다. 10년만에 다시온 도쿄인데 좀 무리하면 어떤가. 인생은 원래 탕진잼이다.
다행이도 직원분들은 영어를 잘했다. 뭔가 영어가 하나도 안통할 것 같은 곳이었는데 의외였다. 오히려 나 같은 관광객에게는 좋다. 내가 음식점에서 할 줄 아는 일본어는 오이쿠라데스까(おいくらですか/얼마예요?), 오미즈 쿠다사이(お水ください/물 주세요.), 오오모리(大盛/큰접시) 쿠다사이, 쿠레지토카도모 츠까에마스까(クレジットカードも使(つか)えますか/신용카드 되나요?) 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에 하시(箸,젓가락)라는 단어를 배워서 잘 써먹고 있긴 하다.
제법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메뉴가 나왔다. 일단 커다란 김으로 비주얼을 압도했다. 먹어보니 진한 국물에 멸치가 섞여 있어서 특유의 담백한 맛이 났다. 육수가 진한 라면이다. 면도 쫄깃하고 칼국수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일본에 와서 이렇게 훌륭한 라멘도 먹게 되다니 딱 보름 전만 해도 내가 신주쿠 뒷골목에서 이러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역시 인생은 한치 앞도 알 수 없기에 스릴이 넘친다.
열심히 먹으려는데 문득 창밖에 비가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오는날, 도쿄 신주쿠에 있는 낡은 거리에서 라멘을 먹으며 비내리는 것을 바라보다니 이 얼마나 멋지고 운치있는 일인가. 마음같아서는 이곳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밤새 술을 마시고 싶었다.
‘용과같이(龍が如く)’게임 때문에 신주쿠 가부키쵸를 방황하다가 의외의 소득을 얻은 것 같아 매우 흡족하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얻은 의외의 즐거움이 여행의 진정한 재미인 것 같다. 아무튼 저녁시간도 다가오고 이제 사람들이 붐빌 것 같았기에 일찍 자리를 떴다. 그리고 우산을 쓰고 다시 신주쿠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문득 김윤아의 도쿄블루스에서 ‘비오는 도쿄의 거리를 거니네’라는 가사가 생각났다.
여기 좋아 보인…
또 가고 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