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여행중에 익숙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 여행 도중 한국음식을 찾듯이 말이다.
내게는 참치회가 그렇다. 집 앞에 독도참치 석계점을 비롯한 몇몇 참치집이 있고, 나는 마치 충전하는 기분으로 한달에 두세번씩 그곳에 들러 참치를 원없이 먹곤 한다. 혼자 먹기도 하고, 집에 놀러오는 친구랑 먹기도 하고, 멀리 신도림 이춘복참치까지 원정가서 지인 여럿과 같이 먹기도 한다.
제주에 온지 어느덧 3주가 흘렀다. 그동안 제주 곳곳의 무수한 맛집에 들러 다양한 음식을 먹었지만, 오늘밤에는 고향의 맛, 육지의 맛을 격하게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의 저녁 메뉴는 참치회로 정했다. 검색해보니 익숙한 독도참치가 서귀포에도 있었다. 고로 오늘의 여행 계획은 독도참치 서귀포점에서 참치를 거하게 먹은 후, 제주워터월드 찜질방에서 잠들기로 결정!
성산일출봉에서 그동안 정들었던 701번 시외 버스를 타고 당당히 ‘서귀포’를 외친 후 목적지로 출발했다. 제주시가 구제주랑 신제주로 나뉘듯이 서귀포도 구서귀포, 신서귀포로 나뉘어 있었는데, 독도참치 서귀포점은 가는 길인 구서귀포에 있었고, 오늘 밤에 머물 제주 워터월드 찜질방은 종점이자 신서귀포인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었다. 분명 동선으로 치면 구서귀포에서 참치를 먹고 신서귀포에서 잠을 자는 것이 맞는데, 문제는 그때가 낮 12시였다는 점이었다. 참치집 영업시간이 오후4시부터라서 문을 열려면 4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상황.
그래서 30분간 버스안에서 고민을 하다가 먼저 신서귀포 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걸로 결정했다. 바로 옆의 제주 월드컵경기장도 구경하고, 또 바로 옆의 이마트 서귀포점에서 우도 땅콩막걸리도 사서 전동휠과 함께 육지로 택배 보낸 다음에 적당히 시간맞춰 구서귀포 동문로터리에 있는 독도참치 서귀포점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신서귀포에 도착하니 이마트 서귀포점에는 우도 땅콩막걸리가 없어서 포기하고, 대신에 근처 편의점(CU제주서호점)에서 전동휠만 택배로 먼저 보낸 다음 월드컵경기장을 둘러보고 시간맞춰 구서귀포로 다시 돌아갔다.
동문로터리에 도착했는데 그래도 시간이 남아서 바로 옆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을 둘러본 다음에 독도참치에 들어갔다. 우리 동네에서는 38000원이던 참치회 스페셜 메뉴가 이곳 서귀포에서는 55000원이었다. 처음에는 흠칫 놀랐지만 그래도 참치를 먹겠다는 일념은 굳건하였기에 스페셜로 주문을 하였다. 전국 프랜차이즈라서 가격이 같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주이다 보니 운송비라든지 각종 비용을 맞추기가 어려웠나 보다.
아무튼 중앙의 테이블(보통 다찌 라고 부르던데 뜻은 모르겠다)에 앉아 어젯밤부터 계속 생각났던 참치를 기다렸다. 물론 술은 한라산 소주다. 주당들의 종착지 한라산 소주. 참이슬이 빨간거(참이슬 클래식)로 불리듯이 한라산은 하얀거(한라산 오리지날)로 불린다.
그렇게 참치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배경 음악으로 바흐의 평균율이 흘러나왔다. 독도참치 석계역점이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은은한 음악이 베이스라면, 이곳 독도참치 서귀포점은 정갈한 클래식 음악이 베이스인 것 같았다. 잔잔한 음악을 듣고 있자니 문득 육지가 미치도록 그리워졌다.
아무튼 조용한 참치회 전문점에서 끊임없이 참치를 흡입하였다. 오랜만에 먹는 익숙한 그 맛. 여행지에서 느끼는 고향의 맛. 긴 여행으로 지친 영혼이 충전되는 이 기분. 그렇게 기나긴 제주도 여행의 어느날은 제주 여행스럽지 않은 곳에서 참치회를 먹으며 향수를 느끼며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