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리생활 100일째. 집에만 계속 있으니 역시 행복하다.

어느덧 100일동안 계속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2020년 3월말인데 마지막 외출을 2019년에 했다는 이야기다. 원래 이정도까지 길어질거라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요즘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에 분위기가 뒤숭숭한 관계로 본의 아니게 생각보다 훨씬 더 장기간 격리생활을 하게 되었다.

사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훨씬 전인 2019년 봄부터 자체적으로 집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외출은 한달에 한번씩만 했다. 일하느라 바빠서 그런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계속 집에만 있다보니 점점 집밖에 나가기가 귀찮아지기도 했다. 어쩌다 밖에 나가도 지루하다는 생각만 들고 점점 집돌이 체질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젠리(Zenly)의 현재위치와 마지막 시간 표시

젠리(Zenly)에 표시된 마지막 위치의 시간. 100일동안 집에 머물렀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동안은 몇달째 집안에만 있어본 적은 없었는데, 이번 코로나19를 통해 장기간 집안에 칩거해보니 결론은 역시 집이 제일 편안한 곳이라는 것. 동굴 속에서 100일동안 마늘과 쑥을 먹은 웅녀도 아니고 아무리 집돌이라도 장기간 집구석에만 있으면 답답하거나 뭔가 문제같은 것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불편함이라든가 답답함은 전혀 느끼지를 못하고 행복만 가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세상이 점점 집안에만 머물러도 불편하지 않도록 바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거의 모든 것을 집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대다.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쾌적하고 안전하며 저렴하기까지 하다.

인터넷으로 식재료를 주문해서 냉장고에 든든하게 채워두고, 각종 조리도구들로 다양한 요리를 할 수 있고, 공기청정기로 24시간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으며, 냉난방을 쾌적한 온도로 설정해 두면 방안이 곧 천국이자 파라다이스다.

넷플릭스로 하루 종일 영화를 볼 수 있고 , 리디북스로 하루종일 책도 읽을 수 있으며 플레이스테이션 및 스팀으로 밤새도록 게임도 하고 VR로 가상현실의 세상속을 돌아다니며, 웹툰, 유튜브 등 절대로 심심하지 않을 수많은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방구석 라이프가 가능한 아름다운 세상인데, 번거롭게 집밖에 나가서 돈써가며 고생해야 할 이유는 더더욱 줄어들고 있다. 굳이 미세먼지나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기간의 집돌이 생활에 딱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 바로 머리를 못 깎는 것이다. 이건 어떻게 내가 집안에서 할 수 없는 문제다. 중이 제 머리 못깎는다는 옛말이 와닿는 순간이다. 사실 그동안 한달에 한번씩 외출을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이발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바이러스 때문에 무려 100일씩이나 집밖을 안나갔더니 머리가 원시인처럼 되어가고 있다.

아무튼 이발 문제만 해결되면 100일이 아니라 1년 이상 은둔생활도 문제 없을 것 같다. 그래도 1년에 한번 정도는 외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건강검진 정도는 받아야 하니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우며 봄에는 미세먼지가 가득하니 청명한 가을이 외출하기에 좋을 것 같다.

전세계가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연결된 세상이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각 개개인은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각자의 공간에서 고립된 삶이 가능해졌다. 미래사회는 점점 더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더더욱 집콕생활을 알차게 만들어 보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건 모르겠고 그냥 ‘세상과 거리두기’ 같은거를 해볼까 한다. 역시 이불밖은 위험하고, 방안은 언제나 아늑함과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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