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2025년7월~8월)에 티베트와 에베레스트산에 다녀왔다. 대략 해발3600m에서 5200m 사이의 고도를 왔다갔다했고 중간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해발 약5000m)에서 숙박도 했는데 그 때 겪었던 여러 고산증에 관한 경험과 기억들을 최대한 이곳에 기록으로 남겨 두고자 한다.
여행전 준비
출발 열흘 전부터 홍경천(紅景天)이라는 약을 먹었다. 티베트 현지에서 고산증 예방약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는다고 한다. 직접 먹어보니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여행이 끝날 때까지 꾸준히 먹었다. 의약품이라기보다는 건강보조식품에 가까웠다.

출국하기 이틀 전, 병원에서 고산증 약을 처방해 달라고 했더니 비아그라(실제는 팔팔정)를 처방해 주었다. 집에서 테스트 겸 먹어보니 약간 술마신 느낌도 나고 아무래도 여행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비상상황일 때만 사용하려고 여행 중에는 최대한 아껴 두었는데 결국 하나도 먹지 않고 그대로 들고 다시 귀국했다.
대신에 흔히 고산병 약으로 많이 알려진 ‘아세타졸아마이드(Acetazolamide)’를 먹었다. 고산지역에 들어온 첫날부터 250mg짜리 알약 하나를 하루에 두번씩 매일 먹었다. 부작용은 손끝이 저리다는 느낌이 있는 것이었고 그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약간 졸린 것 같기도 한데 이게 약효 때문인지 고산병 증상 중의 하나인지 아니면 여행중에 계속 기차타고 버스 타고 이동하느라 피곤해서인지는 모르겠다.
나에게 고산병 증상은 주로 두통이었다. 그래서 평소에 두통이 생겼을 때 자주 사용하는 아스피린도 먹었다. 결과적으로 꽤 효과가 좋았다. 많이들 사용하는 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나 나프록센(Naproxen)은 평소에도 효과가 별로 없어서 잘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이번 여행에는 들고가지 않았다.
중국은 사실상 모든 곳이 흡연구역이었다. 공공 화장실은 담배연기와 담배냄새로 가득했으며 담배를 문 채로 소변을 보는 사람들도 매우 흔하게 보였다. 심지어 버스터미널의 대합실 같은 실내구역조차 아무렇지도 않게 다들 담배를 피우고 바닥에 꽁초를 버렸다. 안그래도 고산병 때문에 두통이 심한데 담배냄새 때문에 두통이 더 심해진 원인이 되었다.


고산지대에서 머물렀던 모든 호텔에는 방마다 산소 공급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 침대 옆의 벽면에 호스를 연결할 수 있는 구멍이 있는데 뚜껑을 열어보면 안에 조그만 물병 같은 것이 보인다. 그곳에다 물을 담고 스위치를 켜면 부글부글 거품이 나오면서 산소가 공급된다. 가열식 가습기에서 나는 소리랑 비슷해서 아늑한 백색소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필요하면 호스를 연결해서 코에다 장착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잘 때는 딱히 불편함 없이 잘 잤고 아침에 일어날 때에도 개운했다. 그리고 24시간 나오는 것은 아니고 저녁 이후부터 새벽까지만 가동이 되며 산소 제공 시간은 호텔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티베트 지역 내에서는 24인승 단체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며 낡고 지저분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깨끗하고 시설도 좋았다. 호텔과 달리 버스 내에는 별도의 산소공급 장치나 기압유지 장치 같은 것은 없었고 대신에 심해탐험하는 잠수부들이 쓸 것 같이 생긴 커다란 산소통이 버스내에 비치되어 있었다. 고산병 증세가 심한 사람은 이 고압산소를 15분간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사용해 본 사람의 말로는 효과가 엄청나다고 하였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도로포장이 잘 되어 있어서 멀미는 딱히 없었다. 최근10년 사이에 기반시설이 굉장히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티베트 곳곳에서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그리고 개인별로 600ml짜리 휴대용 산소캔을 들고 다녔다. 크기는 에프킬라 정도였지만 무게는 매우 가벼웠다. 백팩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종종 꺼내서 사용하곤 했다. 사용 방법은 뚜껑을 열고 입과 코의 모양에 맞게 수직으로 결착한 후(코 부분은 뾰족하게 홈이 파여 있고 입부분은 둥그스름하게 홈이 파여 있으므로 상하를 잘 구분해야 한다) 입에다 대고 스프레이 뿌리듯이 누르면 치익하면서 산소가 나오며, 그에 맞춰 숨을 들이쉬면 된다. 산소캔을 흡입한다고 두통이 사라진다거나 뭔가 프레쉬해지는 느낌은 솔직히 없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해두면 좋겠지라는 마음으로 꾸준히 흡입했다. 해발4000미터 이상의 고도에서는 평균적으로 30분마다 1회씩, 한번 사용시 5번 정도의 심호흡을 하면서 산소를 흡입했다. 그 정도면 하루에 한 캔을 다 사용할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남은 것은 나보다 더 상황이 급한 사람에게 넘겨 주었다.

일행 중 한명이 휴대용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가져와서 고도별로 산소포화도를 테스트 해볼 수 있었다. 정상값은 95~100% SpO2이지만 고산지대로 올라갈수록 수치가 떨어졌다. 해발3600m에서는 87~93% SpO2 가량 나왔고, 해발4000m이상에서는 80~85%SpO2, 해발5000m이상에서는 75~80%SpO2정도 나왔다. 깊은 호흡을 몇번 하고나면 수치가 3%p정도 올라갔다. 만약 일반적인 낮은 고도의 육지에서 이런 수치였다면 당장 병원에 달려가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치라고 한다. 아무튼 여행 전반에 걸쳐 다들 평균적으로 70%~90%사이를 왔다갔다 했으며 60%대로 떨어진 사람도 있었는데 힘들어 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결국 버스안에 비치된 고압산소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에서는 일부 중국인 관광객들이 자동화된 산소공급장치를 등에 메고 돌아다니는 것도 봤다. 등에 사각형 모양의 산소통을 메고 호스를 통해 코에 연결하는 방식인데, 뭔가 모터 같은 것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대략 5초에 한번씩 칙 소리를 내면서 자동으로 산소를 내뿜는 장치인 것 같았다. 나도 얼핏 본 것이라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다.
여행 전체 일정은 13박14일이었으며 앞뒤로 중국 시안(西安)에서 3~4일씩 머물렀으므로, 실제 고산지대에 머물렀던 기간은 7박8일이다. 고산지대에서 머물렀던 기간만을 기준으로 각 날짜별 숙박할 때의 고도를 이야기하면, 첫날 밤은 해발2200m의 시닝(西宁)역에서 칭짱열차(青藏铁路)를 타고 평균 해발고도3000~4000m를 오르락 내리락 하였다. 2일째 밤에 머문 라싸(拉萨)라는 도시는 해발3650m였고 고산지역 적응을 위해 3일째 밤에도 라싸에서 머물렀다. 4일째 밤에 머문 시가체(日喀则)라는 도시는 3860m, 5일째 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는 4980m, 6일째 밤은 시가체(日喀则) 3860m, 마지막 7일째 밤은 라싸(拉萨) 3650m이다. 에베레스트에서 숙박하는 5일째 밤까지 계속 고도를 높여 나간 후에 다시 왔던 길 그대로 내려오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낮에는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 이동하면서 고도가 수백미터씩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산병이 심해진다는 이유로 라싸(拉萨/고도3650m)에 도착한 첫날밤에는 샤워를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미 26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오느라 못씻은 상황에다 도착 후에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땀을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미지근한 물로 대충 몸을 씻어냈다. 그리고 며칠 뒤 묵게 될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시설이 꽤 좋았음에도 샤워실 자체가 없었다. 높은 곳에서는 씻으면 안된다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나 보다.

그래서인지 라싸(拉萨/고도3650m)에 도착한 다음날인 3일째부터 감기에 걸렸다. 원래 좀처럼 감기에 안걸리는 체질이라 이것이 어쩌면 또 다른 고산병 증세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필 그날 우연찮게 감기가 걸린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증상은 완벽하게 감기와 똑같았다. 그래서 기존에 먹고 있었던 홍경천,아세타졸에다가 감기약까지 먹게 되었다. 약효과 때문인지 기침은 없었고 두통과 콧물만 나왔다. 그리고 일행 중 다른 한명도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8명중 2명만 증세가 있다는 말은 감기같은 전염병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고산병 증상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4일째는 감기(혹은 고산병 증세)에다가 두통까지 심해져서 아스피린1000mg(500mg짜리 2알)을 먹은채로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고도3600미터에서 4900미터가 넘는 곳들을 오르락 내리락 했었지만 딱히 숨이 차거나 하는 증상은 없었다. 그저 머리가 아플 뿐이었다. 숙박은 전날보다 고도가 200미터 가량 높아진 시가체(日喀则/고도3860m)라는 도시에서 하였다. 이날 밤에는 먹을 수 있는 약들은 종류별로 다먹고 일찌감치 잠들어서 푹 쉰 덕분에 다음날부터는 어느정도 회복된 상태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높이 올라간 곳은 5일째 낮에 갔던 해발고도 5248m인 자초라산(嘉措拉山)이라는 곳이다. 산이라기 보다는 평원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이곳은 에베레스트산으로 가는 입구인데, 그날 저녁에 도착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는 막상 이보다 낮은 해발4980m였다. 이때는 아직 남아있는 감기기운인지 아니면 해발5000미터에서 새롭게 생긴 고산병 증세인지는 몰라도 마치 전날 엄청난 과음을 해서 숙취에 시달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날도 특별히 숨이 차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머리가 띵할 뿐이었다. 산소포화도는 75~80% SpO2정도였고 틈틈이 휴대용 산소캔을 흡입했다. 그리고 숨을 쉴 때는 항상 심호흡을 하려고 노력했다.


에베레스트산을 바라보며 해발5천미터에서 숙박을 한 다음날인 6일째는 이틀 전의 3860미터 지점, 즉 시가체(日喀则)로 다시 내려왔는데 증세가 급격히 좋아졌다. 산소포화도는 아직 85%SpO2였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감기가 나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고산증에 적응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래서 이때부터는 마음놓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알딸딸해져서 그런지 며칠동안 나를 괴롭혔던 거의 모든 통증도 함께 사라졌다. 불과 이틀전에는 3860m의 높이에 힘들어서 온갖 약을 먹으며 버텼었는데, 그저 하룻밤 사이에 5천미터에서 좀 놀아봤다고 이제는 해발3860미터 정도는 동네 뒷산처럼 느껴졌다. 참고로 일본 후지산 높이가 3776m이다.

7일째에는 다시 라싸(拉萨/해발3650m)로 돌아왔는데 그냥 평지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해발3600m나 해발36m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이제는 고산증 약이고 산소캔이고 전혀 필요가 없어졌다. 일행들 아무도 더 이상 산소캔을 찾지 않았다. 밑바닥의 세계는 섭씨4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하늘과 가까운 이 곳 티베트는 매우 맑고 화창한 것이 마치 한국의 9월20일 같은 청명한 가을 날씨였다.

그리고 티베트 일정을 마친 직후에 일행중 또 한명이 감기에 걸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전염이 되고 있었던 것인가. 어쩌면 진짜 감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산병 증세였는지 진짜 감기였는지는 다음번에 고산지대를 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다음번에 고산지대를 여행할 때 챙겨야 할 의약품 목록을 적어둔다. 이번 여행을 통해 고산병 증상이 주로 숙취와 비슷한 두통이었므로 그와 관련된 약들이 위주다.
- 아세틸살리실산(Acetylsalicylic Acid). 일명 아스피린(Aspirin) 500mg : 평소때도 자주 애용해 왔고 이번에 고산병에도 효과가 좋았는데 몇개 안들고가서 매우 부족했던 약. 다음번에는 여유있게 20정짜리 한박스를 다 들고 가면 될 것 같다.
- 이부프로펜(Ibuprofen) : 진통제. 이것도 혹시 모르는 마음에 비상용으로 챙겨갈 생각.
- 종합감기약 : 감기 뿐 아니라 각종 잡다한 몸살에 대응하기 좋고, 먹고 밤에 일찍 잠들어서 다음날 개운하게 일어나는데 좋았다.
- 아세타졸아마이드(Acetazolamide) 250mg : 가장 표준적인 고산병 약. 이번 여행에서는 감기랑 겹치는 바람에 순수한 고산병 예방에는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여행내내 꾸준히 먹다 보니 결국 부족했던 약이다. 처방전 약이라서 최대 몇 알까지 처방받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많이 확보해 놓을 것.
- 실데나필(Sildenafil). 일명 비아그라(Viagra) : 이번 여행에는 사용하지 못했지만 다음번 고산병 때에는 테스트 해볼 생각이다.
- 산소포화도 측정기(Oximeter) : 고산지대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숨은 잘 쉬고 있는지 죽어가고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다. 1만원~2만원 내외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 가능.
위의 약 중에서 아세타졸 아마이드와 실데나필(비아그라)은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야 살 수 있고 나머지는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구매가 가능하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에는 방문 국가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으니 미리 알아보고 준비할 것. 해외직구로도 구할 수는 있다고 하는데 안해봐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