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큰 기대를 하고 산 키보드였다. 오랜 고심 끝에 선택한 ABKO K360 키보드는 생활방수가 아닌 완전방수 키보드 중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키보드였다. 맥주 한병 왈칵 쏟아도 물에 담궈 빡빡 씻을 수 있는 그런 키보드는 이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리고 앱코 K360 키보드는 그런 얼마 안되는 키보드중에 최고로 예쁘고 화려했다.
택배가 오자마자 잽싸게 설치했다. 키보드를 사용할 환경이 이리저리 물이 튀는 환경이고 물묻은 손으로 키보드를 사용할 예정이라 완전방수 키보드는 필수였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앱코 K360의 화려한 LED와 함께 이 여름을 보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 일은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처음 노트북에 연결하고 키보드를 치는 순간 ‘어, 이거 뭐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찌릿찌릿하고 따끔한 이 느낌, 아주 오래전 냉장고 뒷면에서 느꼈고, 요즘도 가끔씩 데스크탑 뒷면을 만지면 느끼게 되는 전기가 통하는 그 감각. 설마 하는 마음에 다른 컴퓨터에도 연결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따끔거렸다. 이럴수가. 오늘 새로 샀는데…
알아보니 역시 접지의 문제였다. 내 제품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요즘 지어지는 집들은 접지가 의무화되어 있으니,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접지가 되어 있지 않은 오래된 우리집에서는 위험하다. 전기 통하는 느낌이 약간 지릿한 정도가 아니라 따가워서 사용을 못할 정도. 그 말인즉 USB에서 들어온 전기계통이 어떻게든 알루미늄 상판과 연결이 되어 있다.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 방수처리보다 절연처리가 훨씬 쉬울텐데… 이 정도면 제품결함까지는 아니더라도 설계실수라고는 봐야 한다. 어쩌면 접지가 되지 않는 낡은 집에 사는 내가 죄인일 수도 있다. 수도관에 몰래 접지하려고 몇년째 벼르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한 내 게으름 탓이다.
원래는 뭔가 멋지게 사진 찍어서 포스팅하려고 제품 도착하기도 전에 이것저것 구상했는데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물은 막았지만 전기는 막지 못하다니 정말 아쉽다. 사실 완전방수 되는 키보드 중에서 이만한 키보드는 없다. 키보드는 새것이었으나 집이 헌 집이라 사용할 수 없다니 슬픈 일이다. 고작 그 알루미늄이 도대체 뭐라고 이렇게 치명적일까. 게다가 사실 피부에 알루미늄이 닿는 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땀에 하얗게 변색이 되어서 보기에 좋지 않다. 키보드에 사용하기에는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다. 물론 나는 그걸 이미 감수하고 사긴 했다. 완전방수에 이끌려서…
마음 같아서는 두꺼비에게 헌집 반납하고 새집 받고 싶었지만, 현실은 G마켓 판매자에게 반품신청 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짧은 인연은 여기까지… 다음번에는 ABKO K360의 완전방수 컨셉과 성능 그대로 유지하고, 대신에 알루미늄 제거하고 플라스틱 재질에 블루투스 겸용 키보드로 나오면 좋겠다. 사실 우레탄이 제일 감촉이 좋다. 물론 색상은 화이트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