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일찍 잠이 들어서인지 아침에 텐트에서 일찍 일어났다. 사실은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내가 텐트를 친 곳이 시계방향으로 월정리 해변 끝 쪽, 그러니까 평대해수욕장이나 세화해수욕장 방향으로 가는 길 마지막 부분이었는데, 화장실 위치는 그 반대쪽 끝, 즉 김녕 해수욕장 방향쪽으로 있었다.
걸어가기에는 살짝 귀찮은 거리라서 전동휠을 타고 갔다. 날씨는 화창하여 아침햇살이 해변을 비추고 있었고, 수많은 관광객들로 엄청나게 붐비던 오후의 월정리 해변과는 달리 아침의 월정리 해변은 한적한 어촌마을처럼 고요하였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전동휠을 타고 화장실에 갔다오는 길에 문득 사색의자가 눈에 띄었다. 어제는 관광객들이 줄서서 사진찍고 있어서 차마 근처에 갈 엄두도 못내던 사색의자였는데, 지금은 한적한 해변에 어울리는 조용한 쉼터 같았다.
오래되어서 버릴 수도 있을 법한 이 낡은 의자들을 알록달록하게 색칠해서 이렇게 바다 풍경과 멋지게 조화를 시켜놓다니 참신한 아이디어에 그저 감탄스러웠다.
‘사색 의자’는 유명한 포토존(인증샷 용이니 점거하지 말라고 안내문이 붙어있었다)이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으니 한번 앉아 볼까. 내친 김에 맥주도 한캔 땄다. 그리고 ‘사색 의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진짜로 사색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색(思索)인지 4색(色)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사색보다는 그냥 멍을 때렸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아침햇살을 맞으며 유유자적하게 맥주 한캔을 마셨다. 역시 맥주는 모닝맥주가 꿀맛이다. 이 세상 근심걱정이 사라지는 것 같다.
문득 이 곳 월정리에서 하룻밤을 더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텐트를 걷지 않은 채 근처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을 산 뒤 편의점 앞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근처 식당도 있었지만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소리를 들으며 먹고 싶었다. 그렇게 월정리의 바닷가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