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한달 후 생긴 변화…나쁘지 않다.

어느 덧 술을 끊은지 한달이 훌쩍 넘었다. 완전히 끊을 생각은 애당초 없었는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한달이 넘도록 한잔도 마시지 못했다. 불과 작년 연말까지만 하더라도 잘 때 빼고는 항상 술에 취해 있었고, 게다가 마시는 양도 5%짜리 맥주로 환산하면 매일 5리터(즉 5000cc) 정도씩 마셨기에 은근히 건강이 걱정이 되었다. 은근히가 아니라 솔직히 매우 걱정되었다.

집에서 양꼬치구이 해먹는다고 칭따오도 코스트코에서 대량으로 샀다. 그런데 계산해보니 혼자서 먹어도 일주일 분량밖에 안되었다.

아무튼 가벼운 새해 결심이 이렇게 작심삼일 수준을 넘어 작심삼십일이 되었는데, 작심30일이 훌쩍 지난 지금 금주 후 일어난 변화를 한번 써볼까 한다.

  1. 하루하루가 신선하다.

    매일매일 습관적으로 음주를 하던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뭔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그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기 시작하면서 신선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무려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시지 않은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정신을 가진 삶이라니 너무나 참신하고 신기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느낌은 딱 보름이 지나니 사라졌다. 이제는 술을 안마시는 삶이 정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2.  귀차니즘이 만연해진다.

    이미 아무것도 안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술을 끊고 나니 더더욱 귀찮아졌다. 심지어 밥하기 귀찮아서 그냥 굶을 정도다. 다행이도 숨쉬는 건 안귀찮다.

  3. 사람 만나는 것에 무관심해 진다.

    예전에는 술자리에 절대 빠지지 않았고, 심지어 술마실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서까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심지어 혼자서 술마실 때에도 페이스북에 종종 글을 남기거나 댓글도 달고, 단체 카톡 방에 이야기도 종종 하고, 지인들한테 연락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거 안한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뭐 알아서들 잘 살겠지. 나도 잘 살고 있고…

  4. 돈이 절약된다.

    술값이 안들어가니 당연한 이야기다. 게다가 값나가는 안주도 덩달아 못먹게 된다. 예를 들면 참치회라든가… 지금은 하루 식비 오천원도 안되는 것 같다. 술을 안먹으니 고기와 회도 안먹게 되고 오직 빵과 우유와 밥과 채소만으로 연명하니 식생활이 저렴해지고 좋다.

  5. 살이 빠진다.

    몸무게가 5kg정도 빠졌다. 한달에 8kg 감량한 적도 예전에 있었으니 그렇게 많이 빠진 것은 아니다. 술에 칼로리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다이어트의 효과가 순수하게 금주로 인하여 생긴 것인지, 안주를 안먹어서 살이 빠진 건지, 그냥 만사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먹어서 빠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뱃살이 쏙 들어갔다. 뱃살만 들어가면 좋은데 볼살도 쏙 들어가는게 문제다. 누가 보면 아픈 줄…

  6. 안먹던 음식이 먹고 싶고, 잘먹던 음식이 안먹어진다.

    원래 빵이나 과자를 전혀 안먹고 살았다고 봐도 무방한데, 그동안 안먹던 빵이나 과자류의 음식들이 갑자기 먹고 싶어졌다. 일시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으나 단것이 땡기는 것 같기도 하고 탄수화물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예전에는 매우매우 좋아했던 해산물을 거의 안먹게 되었다. 그동안 음식이라는 것은 곧 술안주였고, 요리는 오직 술안주를 만들기 위해 하는 것이었는데, 혈중 알콜농도가 바뀌니 필요로 하는 음식의 종류도 달라지는 것 같다.

  7. 날씨 변화에 둔감해진다.

    예전 같았으면 비오는 날에는 파전에 막걸리, 눈오는 날에는 오뎅에 사케, 흐린 날에는 짬뽕에 소주 이렇게 갖가지 날씨 핑계를 대며 술을 마셨을텐데 이제는 그런거 없다. 아마 지진이 일어나도 모를 듯. 그냥 땅이 흔들리나 보다 라고 생각하겠지.

  8. 남는 시간이 많아지고, 딴 짓을 많이 한다.

    예전 같았으면 술에 취해 있을 시간인데, 이제는 멀쩡한 정신이다 보니 남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시간에 영화를 본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아무튼 그동안 거의 못하던 다른 것들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 전에는 꿈도 못꾸던 밀린 웹툰 보기도 가능할 것 같다.

주로 거실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러고보니 하이네켄 케그도 많이 마셨다. 케그는 기본적으로 8시간 이상 냉장시켜야 하기 때문에(일명 히야시) 여름이라면 냉장고가 비좁아서 자리가 없지만, 겨울이라 날씨가 추워서 밖에 내놓으면 다음날부터 바로 마실 수 있었다.

아무튼 이러한 금욕생활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나도 내가 이렇게 단칼에 술을 끊어버릴 줄은 몰랐다. 영원히 끊는다는 생각보다 잠시 쉰다는 생각이 결국 금주 기간을 더 길게 만드는 것 같다. 사실 술을 참는다는 생각도 별로 안들고 그냥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3월부터는 다시 음주를 시작할 예정인데, 작년처럼 매일매일 마시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는 몸을 좀 사려가면서 마실까 한다. 그리고 올해 겨울에 한달 동안 일본 도쿄에서 편의점 투어 및 히키코모리 체험을 할 예정인데, 그때는 매일매일 마실 예정이라서 그 전에 술마실 기회를 조금 아껴두자는 생각도 있다.

8 thoughts on “금주 한달 후 생긴 변화…나쁘지 않다.

  1. lyt516

    안녕하세요~
    웹서버 관련글 검색하다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맥주 무지 좋아했는데 건강상에 문제로 요즘은 절주하려 노력합니다.
    제가 있는곳은 중국 남쪽 광동성 지역입니다. 아열대 지역이라 봄여름가을 3계절이 한여름입니다.
    이런핑계로 여름에는 시원한 맥주를 자주 마셨었는데 사실 중국여행왔다 칭따오 맥주맛에 반해서
    중국에 정착했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맥주를 좋아했고 중국와서 만족스러운것중 하나가
    수준급의 다양한 맥주맛을 즐길 수 있는 거였습니다.
    위 칭따오 맥주 박스를 보니 그 옛날 한국에서 칭따오 막스로 먹던 기억이 나는군요 ^^
    앞으로 가끔 방문해서 눈팅하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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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옹이아빠

    현재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군요. 전 현재 무작정 금주와 금연을 시작한지 12일이 되었습니다.
    많은 공감이 되기에 댓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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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추 Post author

      금연은 10년 넘게 유지중인 상태이고 금주는 그냥 절주 하는 수준으로 타협했습니다.^^ 12일이면 꽤 오래되었는데 아무쪼록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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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hyunchul kim

    오… 저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6주 정도 금주를 했습니다.(중간에 결혼식장 가서 소주 1잔 마신것 빼고는)
    제가 느낀 것과 상당히 비슷하군요.
    특히, 정신이 청명한 가을하늘 같다는 말씀에 상당히 공감 됩니다.
    저 역시 몸무게가 4kg 정도 줄었고요.

    근데, 음주는 다시 시작했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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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추 Post author

      오, 저랑 비슷한 분이 있었다니 신기하군요.ㅎㅎ 음주도 좋고 금주도 좋고 언제나 아름다운 인생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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