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은 물가가 싸다며 호기롭게 신사임당 몇분만 모시고 인천공항을 떠난지 2주일.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신사임당께서는 나의 방탕한 씀씀이를 버티지 못하고 모두 내 곁을 떠나버렸다.
이 곳 치앙마이는 요술 같은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하루 식비 3천원으로도 버틸 수 있지만 치앙마이 한달살기의 본분을 잊고 3박4일 관광객처럼 매일밤 화려한 태국 요리와 진귀한 과일과 이국의 맥주로 밤을 불태우다 보면 한국 생활 못지않은 탕진 스피드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이제부터 마음을 다잡고 절약하기로 했지만 당장 내일 모레 묵을 숙소비가 걱정되었다. 무려 1천 바트라는 거액이 필요한 상황인데 지갑에는 겨우 수백 바트밖에 없는 상태였다. 방콕과는 달리 이곳 치앙마이는 씨티은행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실 매우 아주 진짜 막막했다.
그래서 결국 현금인출을 해보기로 했다. 시내 편의점에 ATM기기가 쫙 깔려 있기는 하지만 일본에서의 아픈 기억도 있고 혹시나 은행에서 인출하면 좀 더 저렴하지 않을까 하는 무모한 상상을 하며 시내를 배회하기로 했다.
마침 날도 더워서 그냥 눈앞에 보이는 SCB(Siam Commercial Bank)은행에 일단 갔다. 규모도 꽤 커 보였고 ATM기기 앞에는 MasterCard로고도 보이겠다 싶어서 현금인출을 하려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인출거부를 당했다. 사실 알 수 없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다만 태국어로 되어 있어서 내가 무슨 말인지 모를 뿐.
결국 maps.me에서 알려주는 가장 가까운 ATM을 칮아갔다. Krungsri라는 곳인데 길 가다가 자주 본 낯익은 이름이었다.
막상 도칙해보니 그냥 길거리에 덩그러니 ATM기기만 있는 곳이었는데 아무튼 이곳에서 3000바트를 인출했다.
한국어 메뉴는 없었지만 영어 메뉴가 있어서 언어선택을 영어로 했다. ATM기기에서 수수료 220바트를 가져가겠다고 안내 메시지가 떴다. 이럴수가. 220바트면 고기가 잔뜩 들어간 맛있는 태국식 국수를 몇번이나 먹을 수 있는 돈인데 하며 분한 마음이 생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신사임당을 더 모셔오지 못한 내 잘못이다.
아무튼 현금인출을 한 뒤 잠시후 국민은행에서 인출내역 알림이 왔다.11만5983원이 인출되었다.
3천 바트면 엄청 거액을 인출하는 기분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큰 금액이 나가지 않으니 15초간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현재 환율(1바트당 34.1원)로 계산해 보니 무려1바트당 38.66원을 주고 환전한 셈이었다. 현재 기준 환율 대비 13%나 높은 수치였다.
문득 슈퍼리지 환전소와 슈퍼익스체인지 환전소의 환율이 생각나서 눈가에 습기가 가득 맺혔다. 심지어 인천공항 하나은행 환전소보다도 못한 금액이다.
이런 것을 전문용어로 멍청비용이라고 한다. 어쩔 수없다. 그만큼 즐겁게 잘 먹고 잘 놀면 되지라며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인생은 원래 탕진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