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김장을 준비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배추 여러포기를 충분히 담을만한 대용량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는 평소에 그 정도 크기의 통을 사용할 일이 없으니, 김장철이 되면 여러가지 다양한 용기를 사용하여 대용량의 물을 담아서 김장용으로 사용한다. 샤워 욕조에서 하는 경우도 봤고, ‘고무 다라이’라고 불리는 대형 대야도 많이 쓴다.
나의 경우 지금까지 2~3포기 정도의 소량으로만 김장을 했기 때문에 다용도 플라스틱 대야에서 주로 배추를 절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 많이 9포기~10포기 가량 김장을 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보다 큰 절임통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지난 여름 잘 사용했던 풀장에다가 배추를 절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실에 설치한 소형 풀장이라고 해도 배추를 절이기에는 엄청나게 큰 용량이라서 결국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의 풀장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고민하고 검색해 보다가 문득 ‘김장매트’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름은 비록 ‘매트’였지만 물을 담을 수 있는 원통에 가까웠다. 딱 배추 한포기를 담그기에 좋은 정도의 높이(17cm)를 가지고 있었고 재질은 폴리에틸렌이라는 쇼핑백용 두꺼운 비닐 혹은 천막 등에 사용되는 재질이어서 접어서 보관하기도 편해 보였다.
세상 좋아졌다. 이런 물건이 나오다니… 심지어 가격도 풀장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최종적으로 ‘박수홍 김장매트’를 구입하게 되었다. 지름 100cm 높이 17cm이고 가격은 16020원을 줬다(배송비 무료). 크기도 적당했고 가격도 타제품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또한 예전에 김치 만드는 동영상에 박수홍 형님께서 출연한 적이 있어서 익숙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름 브랜드 파워인 셈이다.
통배추 역시 품종을 바꿔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하였다. 이마트에서 파는 ‘베타후레쉬’라는 배추 품종인데, 가운데 노란 부분이 많아서 맛도 있고 건강에도 좋다길래 이번 기회에 김장에 사용해 보기로 하였다. 가격은 1포기당 2500원 수준이고 크기는 일반 배추의 80%정도 되는 듯 했다.
아무튼 김장매트를 깨끗이 씻은 다음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물을 공급하는 급수와 물을 빼는 배수 시설은 여름에 풀장에 사용했던 5미터 샤워호스와 수족관용 펌프를 그대로 사용했다. 풀장과는 달리 용량이 작아서 30분 동안만 수도꼭지를 틀어 놔도 충분히 물이 찼다.
김장 레시피는 예전부터 사용했던 EBS김치 레시피를 사용했다. 레시피에 따르면 배추를 절일 때 물 2리터당 소금 1컵인데, 그 과정에서 김장매트에 담긴 물의 용량을 계산하는 것이 문제였다. 지름 100cm에 높이 17cm의 부피를 계산해보면 50cm X 50cm X 3.14 X 17cm = 133450cm3인데 이것을 1000으로 나누면 총133리터의 부피가 된다. 하지만 물을 가득 담지 않고 12cm정도만 채웠으므로 결국 94리터 정도의 양이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물이 94리터일때 소금은 47컵이 필요하고 물을 가득 채울 경우 66컵까지 필요하다는 뜻인데 수십컵이나 필요하다니 너무 많은 양이 아닌가 싶어서 계속 검색해보고 다시 계산해 봐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정에 없던 천일염 10kg을 추가로 구입했다.
배추는 9포기를 절였는데 지름 100cm의 중형 김장매트에 1층으로 깔아놓을 경우 딱 맞았다. 베타후레쉬 배추가 일반 통배추보다 작기 때문에 보통 배추는 7~8포기 정도 들어갈 것 같았다. 스펙에는 30포기용이라고 되어 있었고, 레시피에는 배추 한포기당 물의 양이 2리터이므로 120리터의 경우 계산상 60포기를 하여야 했지만 그 정도까지 절이기에는 무리일 것 같았다. 물론 겹겹이 쌓으면 어느정도는 더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밤새 배추를 절인 후 다음날 일어나서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물이 새지 않는가였다. 다행이도 방수처리가 잘되어 있어서 물이 샌 부분은 없었다. 배추 절이기에도 편리하고 다른 음식들 만들 때에도 유용할 것 같고 김장매트가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보였다. 아무튼 오전부터 일찌감치 김장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어찌저찌 하다보니 정오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일단 배, 갓, 북어 등 부족한 재료를 마저 준비해서 육수를 끓이기 시작했다.
찹쌀풀도 끓이고 소를 다 만들어 놓고 보니 육수가 꽤 많이 남았다. 다음번에는 육수는 절반 정도만 준비해도 될 것 같다.
바쁘게 움직였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결국 8시간이 지난 저녁 8시 경에 김장이 마무리 되었다. 이제는 그럭저럭 익숙할 법도 하지만 역시 김치 만드는 것은 제조 공정도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게다가 김장하는 양이 갑자기 늘어나다 보니 재료 계산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다음번에는 엑셀이나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하여 자동으로 재료 분량을 계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야 겠다.
아무튼 김장은 무사히 끝나서 김치 냉장고에 가득히 담았다. 원래 갓 담은 김치는 돼지 수육과 함께 그날 먹어야 제맛이다. 그래서 지인들을 불러서 함께 밤새도록 홈파티를 벌이며 음주가무를 즐겼다. 그리고 전날 미리 주문해둔 생굴도 같이 곁들였다. 김치와 수육과 굴회와 함께 하는 소주 한잔의 미덕…역시 아름다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