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어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지 3일째, 그리고 태국에 도착한 지 5일 째. 어제까지만 해도 ‘사왓디캅’과 ‘컵쿤캅’을 말하는 것이 입에 안 붙었는데 하루가 지나니 어색함이 제법 사라졌다.
외국어를 공부할 때 가장 보람찬 순간이 내가 새롭게 배운 외국어 표현을 말할 때, 상대방이 내 말을 알아듣고 반응을 보일 때이다.
‘사와디캅’과 ‘컵쿤캅’에 이어 3번째로 배운 태국어 문장 ‘타오라이크랍’이 지금의 나에겐 그렇다. ‘가격이 얼마예요?’라는 뜻인데 태국인들이 바로 내 말을 알아듣는 것 같다. 계산기를 두드려 숫자를 보여주거나, 영어나 중국어로 가격을 대답하거나, 혹은 진짜로 태국어로 가격을 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태국어 숫자도 함께 공부했다. 요즘 자주 사용하고 있는 네이버 글로벌 회화 어플의 태국어 버전에 숫자단어장이 별도로 있어서 편리하게 공부할 수 있었다. 의외로 태국어 숫자 발음이 한국어와 비슷하고 또한 자릿수가 넘어가도 특별히 신경쓸 것 없이 한국어와 비슷한 넘버링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서 금방 익힐 수 있었다.
어제 저녁 숙소(Stay with Jame)를 나와 타페게이트 밑 Loi Kroh 도로를 걷다 치앙마이 야시장을 배회하고 있었는데, 문득 마음에 드는 컵을 발견했다. 내가 찾던 치앙마이 글자가 새겨진 시티컵이었는데 사실은 소주잔이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사려고 하니까 150바트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다른 컵들은 120바트라고 하였다. 그래서 다른 곳 더 싼 곳이 있겠지 싶어서 야시장을 샅샅히 뒤졌는데 마음에 드는 컵이 없었다. 결국 오늘 저녁에 다시 그곳에 방문해서 이번에는 태국어로 질문했다.
나: ‘타오라이캅?’(얼마예요?)
상점 주인: 블라블라~ 넝로이 하씹 빳(150바트 어쩌고…)
그래서 이때다 싶어서 150바트짜리 내가 원하던 컵과 120바트짜리 그냥 쓸만한 컵 두개를 동시에 들면서, ‘썽로이!(200)’을 외쳤다. 그랬더니 상점주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면서 ‘썽로이 이씹 밧(220바트)!’을 외치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마이차이(아니오)’라고 말하며 잔 하나를 내리고 150바트짜리만 사려고 했더니 갑자기 상점주인이 ‘오케이, 썽로이’하면서 컵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나는 200바트를 지불하고 소주잔 2개를 가지고 나왔다. 떠날 때 ‘컵쿤캅’이라고 말하는 미덕도 잊지 않았다.
사실 영어로 이야기했어도 200바트에 살 수 있었을 것 같긴 하지만, 처음으로 단순한 인사말을 벗어나 태국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는데 의의가 있다. 말은 입밖을 벗어나는 순간 진짜 내것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행하는 도시마다 그 도시 이름이 새겨진 컵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인데, 잘 흥정해서 싸게 구입했다. 굳이 스타벅스에 가서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이에 용기를 얻어 돌아오는 길에 또 길거리 상점에서 반바지 가격을 뜬금없이 물어봤다. 무려 300바트를 부르길래 ‘팽짱크랍(비싸요), 능로이 빳(100바트)!’으로 호기롭게 외쳤더니 진짜로 100바트 콜 하길래 또 엉겁결에 바지도 100바트 주고 사버렸다.
역시 말 배우는 것은 시장바닥에서 배워야 쑥쑥 는다. 왜냐하면 내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처음 서울 올라와서 서울말 배울 때 편의점 알바생 붙잡고 ‘얼마예요?’라고 했던 것이 문득 기억난다.
이렇게 치앙마이에서의 삶은 흥미진진하게 흘러가고 있다. 내일부터는 ‘음식 포장해 주세요’, ‘화장실이 어디인가요?’, ‘전 중국말 못해요’ 같은 시급한 문장들을 태국어로 배울 생각이다. 그리고 사실 태국어 글자를 외우는 것이 더 급하긴 한데, 느린 여행자답게 그때그때 필 꽂히면 공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