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하고 기묘한 헤이리마을의 밤을 거닐었다. 2016-04-23

원과호펜션에서 나와 헤이리 마을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밤에는 여느 한적한 시골마을처럼 고요하였다.

헤이리마을의 밤 풍경. 조용한 골목에 가로등이 켜져있다.

‘와사등’이라는 시가 생각나는 풍경이다. ‘차디찬 등불 하나 빈 하늘에 걸려 있는…’

하지만 어둠 속에서 중간중간 화려한 빛을 발하는 건물들이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조명들이 이곳 한적한 마을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일본 유후인(由布院)처럼 낮에는 아기자기하다가도 해가 지면 완전히 암흑세상이 될 줄 알았는데…

아기자기한 모습의 헤이리마을 레스토랑

COMF-Tree Restaurant

마치 한밤중에 산속을 헤매다가 저 멀리 산장의 불빛이 보일때의 느낌이랄까. 혹은 모두 잠든 도시에서 홀로 불이 켜진 편의점 같은 존재?

붉은 색의 화려한 조명을 가진 카페

cafe between

심지어 안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위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한데, 오직 이곳에만 다른 세상 사람들처럼 앉아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 걸까? 다들 집에는 어떻게 가는 걸까? 여러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그냥 의문스러워만 하기로 했다. 뭐, 다들 알아서 이곳까지 차를 몰고 와서 때가 되면 다시 차를 몰고 돌아가겠지. 아니면 이곳에 살거나 캠핑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고…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지만, 홍대앞에 있을 법한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는 여럿 있는 헤이리 마을. 뭔가 묘하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는 곳이다. 조명이라든가 풍경이 마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마을같기도 하다.

마침 보름달 근처라서 밤하늘의 달이 밝았다. 그래서 달사진을 찍어 보았다. 삼각대나 망원렌즈없이 일반렌즈(17-70mm)로 찍었는데, 몇번 시도하다 보니 제법 달의 모양이 보이기 시작했다. 줌을 최대로 땡기고(70mm), ISO800으로 맞춰놓고, 셔터스피트를 점점 줄였는데, 조리개(F4.5)에 노출시간 1/1600으로 하니 꽤 그럴싸하게 나왔다. 나는 낡은 DSLR D90으로 찍었고, 같이 있던 한명은 RX-100MK3으로 찍었는데, 둘 다 잘나왔다. 솔직히 RX100MK3이 더 잘나왔다.

LCD창에 비춰진 달의 모습

RX100 Mark3으로 찍은 달사진을 확대한 모습. 내 DSLR보다 더 잘나온다.

문득 머나먼 곳에서 확성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늦은 밤에 무슨 일일까? 헤이리마을 어딘가에서 공연을 하거나, 아랫마을 마을회관에서 잔치를 벌이나 싶었는데, 귀 기울여 들어봐도 무슨 내용인지는 잘 들리지 않았다. 뭔가 혼자서 웅변체로 중얼거리는 것이 잔치나 공연이라기 보다는 선거방송이나 민방위훈련 방송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심한 이 시각에 이 정도 민폐 수준이라면 민원도 꽤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문득 북한에서 보내는 대남방송 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도를 보니 임진강 너머 북녁땅까지의 거리도 5km정도에 불과하고 소리가 들려오는 근원지도 북한쪽 방향이었다. 문득 군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돋았다. 그리고 이틀 후, 정말 오랜만에 군대꿈을 꾸게 되었다.

마을 이곳저곳을 더 거닐다가 다시 펜션으로 돌아와 칵테일파티를 시작했다. 4월의 어느 봄날밤은 파주 헤이리마을에서 그렇게 보냈다.

2 thoughts on “한적하고 기묘한 헤이리마을의 밤을 거닐었다. 2016-04-23

  1. RX100 모델 따로 있고 저는 RX100mk3 !!!!ㅋㅋㅋ 별로 잘 안나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군용 ㅎㅎ 북한방송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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