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에서 1시간 남짓 날아서 도착한 제주국제공항. 해는 이미 졌고 늦은 저녁시간이라 빨리 잘 곳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리하여 첫날의 숙소는 인터넷에서 적당히 알아본 ‘용담레포츠 공원 야영장’으로 결정되었다. 제주공항에서도 가까워서 여차하면 카카오택시를 불러서 이동할 생각이었고, 약간 무리하면 걸어서도 충분히 갈만한 거리였다.
제주도에서의 캠핑은 처음인 상황이라 과연 그곳에 텐트를 쳐도 되는지, 제대로 그곳까지 이동할 수 있을지, 날이 어두워져서 텐트를 치지 못하게 될지, 혹시 생각지도 못한 여러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을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모든 것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버스를 타고 용담 레포츠 공원 정류장에 내리니 앞에 쉴 수 있는 의자들이 놓여 있었고, 뒤에는 제법 큰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 건물이 정문인 듯 싶어서 통과하고 보니, 넓은 잔디밭이 펼쳐졌다. 가운데에는 개수대가 있었고, 곳곳에 조명등이 있어서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한쪽에는 중국에서 온 관광객(요우커) 몇 명이 고기를 구우며 파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쪽에는 이미 다른 텐트가 홀로 쳐져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안심하고 적당히 그쪽 근처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있으니 옆자리의 텐트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넓은 잔디밭에는 나를 포함해서 텐트 2개 밖에 없었고, 그쪽도 혼자 온 캠핑이라 같이 술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밤새 나누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인연이랄까.
다음날 아침, 비행기 이륙소리에 잠을 깼다. 공항 근처이다 보니 비행기 착륙, 이륙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같이 캠핑하던 분이랑 근처 편의점에서 식사를 하고 작별인사를 한뒤, 근처 어영마을을 천천히 둘러 보았다. 편의점에 있을 때에는 날씨가 맑았는데 불과 한시간만에 흐려지더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급히 텐트로 돌아와 숙취도 깰겸 누워서 쉬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역시 비행기 소리 때문에 잠을 깼다. 그래서 이곳 ‘용담레포츠공원’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넓은 축구장도 있었고, 놀이터도 있었고, 뭔지 모를 휑한 공터도 있었다. 동네 주민들을 위한 시설인 것 같았고, 실제로도 늦은 시간까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행기 소음 때문에 더 쉬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결국 짐을 싸고 다음 숙소를 찾아 나섰다. 어느 덧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제 우리 주위를 서성이던 흰둥이 개가 이제는 배낭 옆에서 대놓고 드러누워 자고 있었다. 가지 말라는 뜻인가. 그저 눕고 싶을 때 눕는 개팔자가 내 삶 만큼이나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전동휠이 제주도에 도착하지 않아서 오늘밤도 멀리는 못갈 듯 싶었다. 근처 찜질방에서 가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고 텐트를 걷고 용담레포츠공원을 떠났다. 10월의 그 날은 그렇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