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의 굴업도라 불리는 민둥산을 드디어 가게 되었다. 추석 연휴에 캠핑이라니 날씨도 선선하고 얼마나 아름다운가.
민둥산의 높이는 해발 1119미터(1117미터라는 곳도 있다. 어느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이지만 거의 끝부분까지 차로 올라가기 때문에 마지막에 잠깐만 등산을 하면 된다는 말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편한 복장을 하고 텐트,침낭 등의 준비물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마치 여의도 공원에 소풍가는 기분으로 말이다.
여주역에서 일행을 만나 이마트 여주점으로 이동해서 장을 보았다. 양념불고기, 소세지, 라면, 통조림 등과 같은 간단 조리가 가능한 음식들 위주로 준비했고, 주류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알콜도수가 높고 저렴한 보드카를 사서 나중에 페트병으로 옮겼다. 물론 참이슬 클래식 페트병과 물, 쥬스, 콜라도 같이 샀다.
다시 차를 타고 강원도 정선군에 진입하여 민둥산 ‘발구덕기점’까지 차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마지막 화장실도 있고, 작은 가게 같은 것도 있고, 차들도 많이 주차되어 있었다. 우리도 그곳에 차를 주차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다 보니 느낀 건데 역시 산은 산이었다. 딱 100미터 걷고 나니까 숨이 차기 시작했다. 배낭도 배낭이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타포린 백이 굉장히 들고 다니기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년에 이미 민둥산에 왔었던 일행들이 등산용 배낭과 등산화를 신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이유를 그제서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나무가 없고 민둥민둥한 풍경들이 펼쳐지며 정상 능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여기가 바로 민둥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끝이 보이기 시작하면 원래 힘이 나는 법이다. 저기까지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러나 정신과 육체는 달랐다. 또다시 50미터쯤 올라가니 힘이 빠지며 정상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고 빨리 정상에 도착해서 서둘러 잠자리를 준비해야 했기에 느긋하게 움직일 여유가 없었다.
어찌어찌 정상에 오르고 보니 여느 산의 정상과는 다른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사진에서 보던 억새풀은 아직 많이 자라지 않았지만, 산정상에 초원이 펼쳐져 있으니 그 자체로도 묘하고 동화스럽고 메르헨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주위는 매우 고요했고 근처에 아무런 건물이나 인가도 없는 곳이었다. 혼자 왔으면 살짝 무섭고 신비로웠을 같은 곳이었다. 그리고 날씨만 맑았으면 밤에 은하수도 제대로 보일 것 같았다.
정상에는 이미 다른 일행들이 먼저 와서 커다란 텐트와 타프를 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완전 아늑해 보였다. 우리팀도 그렇게 하기 위해 일단 맥주 한캔씩 각자 마시고 함께 타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미 날씨는 어두워졌기에 크레모아(캠핑용 LED 랜턴)를 켜고 작업을 시작했다.
공용 식사 장소로 사용할 타프를 함께 치고 나서 각자 개인 텐트를 쳤다. 아래쪽에 평평한 곳(데크)은 이미 다른 팀들이 텐트를 설치했기에 우리는 정상 비석 바로 옆에 설치했다. 산에서 텐트 치고 자는 것은 군대 있을 때 빼고는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산정상 바로 옆이라니 뭔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적당히 자리를 잡은 후 드디어 식사와 음주를 시작하게 되었다. 다들 테이블도 하나씩 가져오고, 의자도 가져오고, 심지어 와인따개도 개인별로 하나씩 준비했을 정도로 뭔가 준비가 많이 되어 있는 캠핑이었다. 그렇게 산 정상 구름 위에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신선놀음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새벽이 되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내 텐트는 천장 부분이 개방되어 있어서 그 곳으로 빗물이 그대로 들어왔다. 원래 이런 경우에는 덮개가 별도로 있는 것 같던데 내꺼는 2만원짜리 싸구려라 그런 거 없다. 그동안 캠핑할 때 비가 온 적이 한번도 없어서 그려려니 했는데 막상 비가 내리니 꽤나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급한대로 우산을 씌워 놨는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우산은 넘어져 있었고 이미 바닥과 침낭은 흥건하게 젖은 상태였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짐을 철수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비는 계속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몸은 이미 완전히 젖어 있어서 우산이 별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기에 스마트폰이나 보조배터리 만이라도 젖지 않도록 백팩에 레인커버를 씌워서 잘 봉한 다음에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물론 DSLR은 고장날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손에 들고 다니며 계속 사진을 찍었다. 이미 오래되어서 수명이 다한 것도 있지만, 안개가 끼여있는 산의 모습이 너무 멋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찍다 보니 렌즈 안쪽에 습기가 차서 더 이상 찍을 수 없게 되었다.
중간에 빗길에 두어번 넘어지고 미끄러운 돌길을 지나 전날밤에 주차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온 몸이 진흙탕이라 차마 바로 차에 타기에는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그곳의 가게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옆에 있는 수돗물을 사용하라고 해서 수도꼭지를 틀고 흙탕물로 범벅된 옷을 대충 씻은 후에 차에 올라탔다. 텐트도 그렇고 타포린백도 흠뻑 젖어있어서 집에 돌아가면 정비할 일이 꿈만 같았다.
급히 돌아가야하는 일행 한명을 먼저 여주역에 내려주고 우리는 여주 아웃렛에 잠깐 들러 커피 한잔을 마셨다. 이곳 여주 아웃렛도 엄청나게 크고 좋아 보였다. 날씨만 맑았더라면 이곳도 파주 아웃렛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 김에 1박 더하며 여주 여행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전철 시간이 늦지 않도록 부랴부랴 다시 차를 타고 여주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여주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판교역까지 갔다. 그리고 다시 분당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 도착하니 몇 시간 전의 비내리던 날씨와는 완전 달리 너무나 화창할 뿐만 아니라 살짝 덥기까지 했다. 젖었던 옷이 마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시각에도 아직 여주에서는 비가 내린다고 하였다. 비록 좁은 땅덩이지만 날씨는 정말 스펙터클한 것 같다.
집에 도착하니 만사 귀찮아져서 그냥 거실에 적당히 젖은 물건들을 펼쳐놓고는 한숨 푹 쉬었다. 1박2일이었지만 여행 제대로 한 기분이 났다. 그리고 이번 캠핑에서 몇가지 보완해야 할 점을 찾았다. 이 텐트와 가방들을 그대로 들고 가서 제주도에서 한달간 캠핑 했으면 큰일날 뻔 했다. 킬리배낭 같은 여행용 백팩도 사고, 텐트도 NH(Nature Hike, 일명 농협) 초경량 텐트 쪽으로 알아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