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 시절 연대장이었던 장준규 대령을 문득 검색해보니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있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 관련 기사를 보았다. 이름이 뭔가 낯익은 느낌이 들어서 찾아보니 내가 군생활 하던 시절의 연대장이 맞았다. 군사기밀이라서 거의 정보가 없을 것이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뉴스기사도 엄청 많았고 네이버 인물정보에도 검색되고 심지어 나무위키에도 상세한 정보가 있었다.

나는 그 당시 9사단 28연대 직할대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고, 그곳은 여느 평범한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연대 직할대이다 보니 대대장이 아닌 연대장을 최고지휘관으로 삼아 같이 영내 생활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대장이 하는 역할을 연대장이 직접 담당하고 있었다. 학교로 치면 교장선생님이 교육구청장을 같이 담당하는 격이랄까. 그래서 아침조례시간에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듣는 것처럼 각종 부대 행사에서 대대장님 훈시 대신에 연대장님 훈시를 들었다.

대부분의 야전부대 병사가 그렇듯이 영관급 이상의 계급과는 개인적으로 마주칠 일도 잘 없고, 혹시라도 멀리서 보이면 일단 도망가기에 바빴다. 뭔가 경례 자세 같은 걸로 꼬투리 잡힐까봐 두려웠달까. 하지만 이등병 100일 휴가 전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지휘관 면담을 이 분과 했었기에 딱 한번 개인적으로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개인적인 만남은 인자한 아버지 포스를 풍겼던 기억이 난다. 물론 유격 훈련 때는 꽤나 엄격하고 곧이곧았던 기억도 있다. 그 당시 장교, 부사관, 병사들 사이에서 연대장님은 FM 지휘관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그 시절에는 911테러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황이라서 미국 조지 부쉬 대통령은 알카에다를 위시한 중동 지역의 테러집단을 색출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는 상황이었고, 결국 그 대상으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이끄는 이라크를 공격하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이에 보조를 맞춰 한국군 파병을 하기로 결정하였는데 내가 일병이던 시절에 우리 부대에도 이라크파병 지원자 모집 공문이 내려왔다.

전쟁터에 누가 가려고 하겠냐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이라크전쟁 파병 지원자의 경쟁률은 엄청났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수십대 1이 넘었던 것 같다. 병사에게는 수백만원의 월급과 미군 괌 기지 내의 휴양지에서의 휴가가 있었고(당시 상병, 병장 월급이 3~4만원 정도였다), 장교,부사관은 잘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직업군인에게 전시경험은 승진에도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여러 파격적인 대우가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무튼 그 어려운 파병 경쟁을 뚫고 옆중대 일병 아저씨 한명이 최종적으로 뽑혔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 장준규 연대장님도 선택되어서 돌연 이라크로 떠나셨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것은 마치 학창시절 담임 선생님이 6월쯤에 갑자기 결혼을 하고 학교를 휴직해버린 그런 기분이었달까.

어떻게 이라크행이 가능했는지는 병사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고 의견도 분분했다. 하지만 별을 달게 될 것(장성 진급)이라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었다. 대한민국 군인 중에서 전쟁터에서의 경험을 가진 사람은 극소수 인데다가 내가 속한 9사단 백마부대가 노태우, 전두환 같은 전직 대통령들도 거쳐갔기에 간부들 사이에서는 엘리트 진급 코스라는 인식도 있었다. 그리고 연대장(대령)이라면 바로 눈앞의 별을 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해야 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 후에 후임 연대장이 왔고, 그로부터 1년 후에 나는 전역을 했다. 전역 후에는 군생활을 거의 잊고 살았다. 물론 꿈에서는 지겹도록 나왔지만… 그렇게 이제는 10년도 훌쩍 더 지나버렸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구글링을 해서 연대장의 이라크 이후의 소식들을 찾아 보았다.

예상대로 장군 진급은 일찌감치 하였다. 별을 하나 다는 것(준장)도 어려운데 승승장구를 거듭하며 꾸준히 별을 수집한 끝에 무려 4개씩이나 달아서 대장까지 진급을 하고, 마침내 육군참모총장 자리까지 앉았다. 군인 테크에서는 끝판을 찍은 셈이다. 본인 스스로의 실력도 있었겠지만, 나무위키의 표현대로 ‘관운’이 있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뉴스기사를 보면 구설수가 있는데 그걸 누르고 자리에 오를 정도면 확실히 보통은 아니다. 승승장구라는 측면에서 보면 미국 맥아더 장군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황희정승 정도는 될 듯 싶고, 운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후금(청나라)을 건국한 ‘누르하치’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민방위훈련을 가려고 일정을 맞추다가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민방위 훈련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에 문득 옛 생각이 나서 글을 쓴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는데 짜장면이나 먹어야겠다.

16 thoughts on “군생활 시절 연대장이었던 장준규 대령을 문득 검색해보니 육군참모총장이 되어 있었다.

  1. 비공개

    성 소수자 (동성애자) 색출하는데사람 인권을 벌레 취급하는 사람이 4스타 됐네요 ㅎㅎ 관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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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홍군님

    헐 나도 28연대 파견나가서 장준규씨 봤는데 ㅎㅎ 헌병파견대ㅋ 이발병이었던 호연이랑친하게 지내고 그당시 훈련 수신호 지원해줬더니 고생했다고 파견대장한테 회식비 20만원 주고간기억이 생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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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훈너한ㄷ

    28연대 전투지원중대 입니다
    저도 그 당시 연대장님이 장준규 대려 이었어요ㅎㅎ 다른 중대 이지만 반갑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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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라크

    이라크 파병장졍들 괌휴가 또는 일체의 휴가 없이 엄청 고생했소. 사실 관계는 정확해야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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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추 Post author

      이라크 파병 공고문에 그렇게 씌여 있었습니다. 그때 부모님 허가 확인서 같은 것도 제출하고 사단장님 면담도 하고 했을텐데… 직접 파병갔다오신 분이라면 설령 휴가는 못갔다고 하더라도 괌휴양지 자체는 절대 기억 못할 리가 없을텐데요. 그것 때문에 부대가 떠들썩 했습니다. 여러번의 한국군 파병이 있었으니 기수마다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네요. 그리고 하와이도 아니고 괌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이유가 괌에 미군 휴양지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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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남재훈

    저는 그시절 28연대 전투지원중대 1소대장이었는데 1년 정도 근무하고 52사단으로 전보갔던 기억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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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윤석찬

    저는 그때 수색중대장을 했던 사람입니다.
    장준규 연대장님은 정말 훌륭한 지휘관이셨습니다.
    간부나 병사들 대부분 좋아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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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추 Post author

      네. 반갑습니다. 위에 글도 그렇고 그 시절 같은 막사를 썼던 분들을 이렇게 블로그에서 뵙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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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hoya

    제가 군생활할땐 백두산 수색대대장이었어요.
    좋은 분이었음.
    신입대대원 가족들 대대장실에서 다 만나 주시고
    당시에 가혹행위나 이런게 거의 없었음. 99%.

    천리행군때 대청봉에 사단장 헬기 떴다고
    봉우리를 뛰어 다니시던 때가 기억나네요.
    그런 대대장이었던 분이 육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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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추 Post author

      대대장이라면 제가 근무할 때보다 더 오래전의 일이겠군요. 아무쪼록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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