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미래와 아날로그 향수에 대한 이야기 -2부-

관련글 : 1부  –  아날로그 감성? 뻔한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인간 이야기

제2부 – 디지털의 미래와 아날로그 향수에 대한 이야기
시작하며

원래 1부를 7~8년 전쯤에 연습장에 썼다가 3년 전에 블로그에 올린 것이었는데, 2부는 그 시기즈음에 반쯤 쓰다가 말았다. 심지어는 그런 글을 썼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며칠전 우연히 어떤 분이 1부의 글에 댓글을 남기셔서 그에 대한 댓글을 달다가 글이 길어져서 글자제한에 걸리게 되었는데, 옛 생각도 나고, 그냥 이참에 2부도 쓸겸 해서 이런저런 내용과 예시를 더 추가해서 별도의 글로 남긴다.

엄밀히 말하면 이 글은 1부에서 그 분이 다셨던 댓글인 ‘우리의 후손들도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 에 대한 답변이다. 하지만, 답변의 형식을 빌어 2부,3부이후에 쓰려고 했던 예시나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 글은 2부이자 완결편임을 미리 알린다.

원래 3부까지 계획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쓸 여력도 없고, 너무 오래되기도 하였다. 앞으로 관련된 포스트는 아마 없을 것이다.

토익 듣기 교재조차 카세트테이프가 아닌 CD로 나오는 2012년에 뜬금없이 아날로그vs디지털 논쟁이라니 너무 해묵은 것 아니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꼭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기술과 인간과 역사와 미래에 대해 한번쯤은 진지하게 글을 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어 이렇게 길고 지루한 글을 남긴다. 읽다보니 지겹다 싶은 분들은 지체없이 CTRL+W를 눌러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아끼기를 바란다.

본문

우리의 후손들도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에 대한 답변그리고 인간과 기술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

먼저 ‘아날로그 감성’과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구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중세시대의 철갑옷을 보면서 옛스런 멋은 느낄 수 있겠지만, 만약 그 시대에 실제로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군인들이 지금 다시 살아나서 그 갑옷을 보게 된다면, 그들이 느끼게 될 향수는 우리가 바라본 느낌과는 다를 것입니다. 어떤 것에 ‘향수’를 느끼기 위해서는 추억 혹은 기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으로부터 수백년이 지난 후에,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스마트폰’ 같은 첨단의 물건들은 박물관에 전시될 것이고, 우리의 후손들은 ‘수백년전의 사람들이 서로 의사소통을 위해 들고다니던 기계’라는 설명을 들으며 ‘고풍스러운 멋’이 있다고 느끼겠죠. 하지만 그들은 그 물건(스마트폰)에서 향수는 느낄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카카오톡을 할 줄 모를 것이기 때문이며, 스마트폰에 얽힌 여러 추억이나 기억들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죠.

고려청자와 조선백자는 수백년의 시간 간격이 있지만 우리는 그 차이를 안다고 해도 조선백자를 더 미래지향적인 물건으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후손들도 역사공부를 위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를 암기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체를 서로 이미지로 구분지어가며 느끼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면 20세기의 아날로그 물건이나 21세기의 디지털 물건이나, 27세기쯤에는 둘다 수백년전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골동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죠.

말씀하신 흑백영화와 사진의 경우에도 비슷합니다. 철갑옷이 후손들에게 고풍스러운 멋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듯, 흑백영화는 사람들에게 감성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서 개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그냥 색을 표현할 기술이 부족했던 것 뿐이고, 기술이 개발된 후에도 한동안은 비싼 컬러장비를 도입할 돈이 없었던 것 뿐이죠. 게다가 그러한 영상기계는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첨단문명이었습니다. 흑백사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죠. 흑백밖에 없었거나 컬러사진은 비싸서 흑백을 선택하기도 하였고, 컬러사진 자체가 예전에는 변색이 심했기 때문에 오히려 흑백을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에는 흑백 디지털 카메라가 쓰였습니다. 기술이 부족했거나 예산이 없었거나 다른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서 흑백이 장착된 것이지 위성개발자들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흑백이 선택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적,경제적 제약들이 환경을 만들어 내게 되고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고 문화가 되어 다음세대에 전달됩니다.

제가 초등학교(국민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졸업앨범이 흑백앨범에서 컬러앨범으로 막 세대교체를 하던 시기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소풍사진이나 수학여행사진은 전부 컬러로 찍어왔는데도 막상 졸업앨범은 흑백이냐 컬러냐 하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가격도 두배가량 차이가 났지만, 그 당시에는 컬러사진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결국 컬러로 할지 흑백으로 할지 투표까지 했었는데, 흑백을 선택한 사람이 더 많아서 결국 흑백으로 결정되었습니다. 1990년대 초반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해에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생은 그러한 투표없이 무조건 칼라앨범으로 결정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칼라앨범이 선택된 것으로 압니다. 지금 만약 어떤 학교에서 감성을 위해 졸업앨범을 흑백으로 찍자고 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선택할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의 하나로서 흑백사진은 아직도 쓰입니다. 직접 눈에 보이는 것이기에 어떠한 느낌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고, 그 느낌 자체가 좋거나 싫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누군가가 조선시대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려도 충분히 아름다운 예술이 될 수 있듯이, 앞으로도 흑백영상으로 뭔가 예술작품을 만드려는 시도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날로그/디지털은 아주 기술적이고,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입니다. 동전의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지폐가 나왔고, 증기기관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디젤기관이 나왔듯이, 변질이 심한 아날로그의 자료들을 변질없이 영구히 보존하고손실없이 복사,전송하려는 의도에서 디지털 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그 자체는 본질적으로 어떠한 이미지나 느낌을 가지지 않습니다. 비록 혁명적이고 대체로 새로운 방식이며, 편리하고, 정확하고, 영구적이며, 저렴하다고는 해도 디지털 그 자체는 정보를 담기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입니다. 흑백사진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동전처럼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닙니다. 느낄 수 있는 것은 LP 전축의 잡음이나CD의 튐 현상처럼 기계 자체에서 생기는 특성뿐입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품질 비교라는 것도 애매합니다. 30만화소짜리 디카보다는 필름으로 인화한 사진이 훨씬 품질이 좋습니다. 불과 십몇년 전만 해도 디지털 기기와 저장매체의 가격이 너무 비쌌고 품질도 아날로그기기에 비해 형편없었기에 차마 디지털로 뭔가를 할 엄두를 못내었지만, 점점 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디지털 기술이 아날로그를 압도하게 되었고,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에서의 정보들은 이미 디지털로 저장,전송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는 아날로그는 디지털화가 가능한 정보들에 대한 상대적인 의미로서의 아날로그 정보들만을 이야기합니다. 사실 자연상의 거의 대부분의 정보들은 엄밀히 따지자면 아날로그 신호입니다. 원자 단위로 내려가면 진정한 자연은 디지털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우리가 거시적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는 아날로그 정보들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정보들과 디지털을 서로 비교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고 비교대상도 아닙니다. 게다가 애당초 자연상의 정보들을 칭하기 위해서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쓰인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디지털에 대비대는 개념으로서의 연속적인 정보를 아날로그라고 불렀던 것 뿐이죠. 제가 말하는 아날로그도 자연 그대로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에 의한 디지털화가 가능한 아날로그 신호만을 뜻합니다. 파도소리라는 자연의 신호를 녹음하기 위해서는 카세트 테이프같은 인간이 만든 녹음기라는 장치를 사용합니다. 이 녹음기는 아날로그 방식일 수도 있고 디지털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간에 아날로그-디지털로의 전환이 가능합니다. 즉, 이 글의 아날로그 신호라는 것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파도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카세트테이프 같은 녹음기에 녹음된 아날로그 신호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기계식과 전자식으로 생각하면 될 듯 싶습니다.

진정한 파도소리는 바다냄새를 맡으며 듣는 자연의 소리가 제일 좋죠. 바닷냄새, 바람의 촉감, 파도소리 이 모든 것들은 굳이 따지자면 아날로그 신호입니다. 게다가 자연상에 존재하는 상당수의 정보들은 디지털화가 불가능하거나 상용화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오감조차도, 실제 디지털화되어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시각과 청각 두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밖의 촉감,미감,후각은 디지털화가 불가능하거나 아직 연구중인 단계이기에 주위에서 접할 수 없죠. 눈으로 보는 것은 모니터가 있고, 귀로 듣는 것은 스피커가 있지만, 맛과 냄새와 촉감은 어떤 장치를 사용하게 될지 아직 상상이 안갑니다. 최근 4D영화관에서 향기나 의자의 흔들림을 이용한 실험적인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실제의 느낌을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게다가 디지털 음식같은 것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장단점 비교라는 것은 아주아주 좁은 범위에 한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용어가 일반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익숙할 만큼 널리 퍼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날로그적인 느낌’과 실제로 아날로그 방식으로 정보처리를 하는 것이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이야기하고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이라는 것은 실제로 아날로그 방식과 관련되었다기 보다는 뭔가 옛스럽고 자연친화적인 것은 다 아날로그식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디지털도 마찬가지고요. 일종의 유행어 내지는 마케팅 용어 같은 것이지요.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육군’이라는 것인데, 무기에 실제로 얼마나 디지털 장비가 들어갈지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디지털화 시킨다기 보다는 군대를 첨단화 시키겠다는 뜻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찍은 사진’이라고 하는 것도 옛스럽고 다소 낡은 느낌의 사진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실제로는 디카로 찍어서 이런저런 필터를 적용해가며 뽀샵질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필름으로 찍었더라도 스캔해서 파일로 저장하게 되면 그 자체는 이미 디지털 사진인 것입니다. 아날로그의 어떠한 느낌이 필요했을 뿐이지 실제로 디지털로 저장되는지 아날로그로 저장되는지는 모르거나 관심없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디지털과 아날로그에 관한 이미지가 수백년이상 유지되리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디지털조차 익숙하고 낡은 이미지를 가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날로그와 대비된 이미지로는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때가 되면 첨단과 낡음을 나타내는 또 다른 용어를 사용하게 되겠죠. 물론 아날로그스러운 이미지는 사라지더라도 용어 자체는 남을 수 있습니다. ‘나이롱환자(나일론 환자)’,‘시치미를 떼다’,’엿먹이다’같이 실제 그 단어가 유래한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파생되어 다른 뜻으로 쓰일 수는 있습니다.

정보를 담는 방식이 파피루스에서 종이로 넘어갔듯이, 지금은 그 정보들이 다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수백년,수천년 전의 그림이나 글들도 영구보존을 위해서 디지털로 변환하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좋다는 사람은 이 시대에 충분히 많이 있어도, 종이보다 파피루스를 더 익숙하고 감성적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결코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에 대해서도 수백년 후에는, 우리가 책에서 파피루스와 종이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읽듯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날로그 감성’라는 관념 자체가 과도기적인 이 시대만의 역사적인 산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아날로그-디지털의 논쟁이 아니라 디지털 내에서의 구기술과 신기술의 이야기로 점점 넘어가고 있습니다. 20년도 더 된 8비트 게임이나 흑백모니터로 채팅하던 PC통신은 비록 디지털방식이었지만, 지금의 화려한 그래픽의 3D게임이나 오색찬란한 요즘의 인터넷사이트에 비하면 아주 초라하고 단순했죠. 하지만 그 시절에 유년을 보낸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삭막하고 악플이 넘쳐나는 인터넷 환경과 비교하면서, 따스하고 정겹고 그리운 그 시절이 좋았다며 추억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의 경우도 2G나3G나 4G(LTE).그리고 피처폰,스마트폰 모두 다 디지털 방식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어떤 이들은 유행에 따라 최신식의 4G방식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여전히 오래된 2G방식과 피처폰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같은 디지털 기계 내에서도 신기술에 대한 반발심과 옛것에 대한 향수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날로그가 좋았던 것이 아니라 단지 옛것,익숙한 것이 좋았거나 혹은 신기술에 거부감이 들고 변화가 싫었다는 뜻이죠. 앞으로도 수많은 기술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고, 미래의 사람들은 그 새로운 기술에 대해 호불호가 갈릴 것입니다. 수백년 후의 후손들은 앞으로 나타날 수많은 기술들을 두고 굳이 수백년전의 기술중 하나였던 디지털,아날로그에서 감성을 찾으려고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의 변화는 마치 증기기관에서 디젤기관의 변화와 비슷하게 하나의 사건으로만 바라볼 것입니다. 아날로그-디지털이라는 것도 결국 구기술신기술간의 교체라는 역사의 한 흐름이니까요.

사실 어느 시대에나 사람은 인간적인 것을 원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라져가는 옛 것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아날로그가 이 시대의 ‘낡았지만 인간적인 감성의 대표’이고, 디지털은 ‘첨단이지만 삭막함의 상징’이듯이, 다음 시대에는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서 인류를 편리하게 만들고자 할 것이고, 또한 기존의 것에 익숙한 사람들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면서 옛것에 대한 감성을 자극할 것입니다. 3D영화가 일반화 되면 2D영화를 그리워 할 수 있습니다. LED전등이 일반화되면 형광등을 따뜻하고 인간미 넘쳤던 물건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우주선은 그보다 더 미래의 우주선이 나올 시대에는 ‘촌스러운 그 시절 추억의 물건’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문명이 생겨도 사람의 마음 자체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년 후에도 ‘우리 때는 안그랬는데, 요즘은…’이라는 말이 나올 것입니다. 여전히 사랑하고 증오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며 살 것입니다. 소설가는 원고지에 써서 출판하거나, 컴퓨터로 소설을 써서 출판하거나, 앞으로 나올 뭔가 새로운 기계를 이용하거나에 상관없이 똑같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디지털 방식으로 촬영되고 있는 영화들은 수백년 후에도 전혀 화질의 손상없이 우리의 후손들을 울고 웃게 할 것이고, 우리가 듣고 있는 MP3파일은 수천년 후의 후손들도 우리와 똑같이 들으면서 같은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디지털/아나로그는 그러한 인간의 사상,감정,생각,현상,정보들을 담아두고 처리하는 도구인 것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떠한 기술이나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경험익숙함,마음가짐그리고 그것을 함께 한 사람들과의 추억이겠죠. 인간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과 사람은 시대에 상관없이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것을 원한다는 전반적은 틀은 님의 의견과 같습니다. 다만, 미래에도 그 인간적인 대상이 여전히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될것이냐가 관점의 차이겠지요. 1부에서 제가 후손 이야기를 했던 이유는 아날로그 제품들이 후손들에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을 것이라기보다는 ‘디지털 제품이나 아날로그 제품이나 둘 다 모두 먼 미래에는 선조의 숨결이 묻어있는 옛스런 느낌이 나는 역사속의 낡은 물건들이 될 것이고아날로그라고 더 특별하게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의도였으며, 또한 이 글의 한줄요약이기도 합니다.

-2부 끝-

▲ 일명 ‘흑개미와 백개미들의 전쟁’이라고 불리는 화이트 노이즈 화면. 디지털 방송과 텔레비전이 일반화 되면서 이러한 화면도 점점 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끝맺으며

원래 생각했던 내용보다도 글이 상당히 길어졌다. 게다가 이것저것 무리하게 집어넣으려다 보니 중복되는 내용도 많은 것 같다.

글 쓰는 내내 이 글이 과연 2012년에 걸맞는 글인가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오래된 우위논쟁이었던 CD가 음질이 좋은지 LP가 음질이 좋은지, 필름카메라가 화질이 좋은지 디지털카메라가 화질이 좋은지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텔레비전의 아날로그 방송도 올해 말에는 종료된다. 혹시 만약을 대비해서 카세트테이프 재생기와 VHS비디오 플레이어를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두고 있지만, 이미 10년 가까이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4년전에 구입한 디지털 광케이블(SPDIF)로 연결된 5.1채널 스피커는 여전히 쓰기 불편하다. 여유가 생기면 내년쯤 아날로그 방식의 5.1채널 스피커로 새로 구입할 예정이다.

10년 전에 CD로 구워둔 수많은 영화들은 지금 재생이 제대로 될 지 걱정이다. 아날로그방식의 VHS로 녹화한 영화는 비록 낡을지언정 10년이 지나도 재생은 되겠지만, 디지털방식의 CD로 구워둔 영화는 비록 화질은 변하지 않더라도 CD 자체에 문제가 생기면 완전히 깨져서 전혀 읽지 못할 수도 있다. 공시디의 수명이 실제로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결국 읽히지 않는 시디를 붙잡고 절규하는 그 순간이 CD의 수명이 될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디지털의 속성이라고 해도, 그 디지털 정보를 담는 매체 자체가 변질되어 버리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미래에 영구적인 매체가 개발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아직은 백업이 진리다.

문득 이 글이 괜히 시대의 흐름에 반발하는 듯한 인상을 줄까봐 살짝 신경이 쓰인다. 비록 여기는 그저 한 개인의 블로그일 뿐이긴 하지만…

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짓일게다.

** 싸이블로그의 글을 워드프레스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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