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전화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제 대부분 개인적인 의사소통은 카카오톡 같은 인터넷기반 메신저를 더 많이 쓰지 않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텔레그램(Telegram)도 많이 쓰고 있고, 슬랙(Slack)도 꽤나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게다가 업무상 연락은 오직 이메일로만 주고 받는 나의 경우에는 더더욱 전화 통화를 할 일이 없다. 중국집 짜장면 주문도 배달의 민족 같은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고 있다 보니 한달 통화량은 10분도 안된다.
솔직히 요즘에는 누군가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오면 일단 스트레스 부터 쌓인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꼭 낮잠을 자고 있을 때에 유난히 전화가 많이 오는 것 같다. 그것도 하필이면 택배 등을 받기 위해 무음이 아닌 진동으로 설정해둔 날에 말이다.
물론 스팸전화의 온상인 070번호는 애시당초 차단을 해두었고, 발신자가 누구인지 확인해주는 후스콜(whos call)도 오래전부터 사용중이지만 그러한 필터를 거쳐서 무사히 들어온 전화들 조차도 여전히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다. 문자로 보내도 될 것을 꼭 음성통화로 하려고 한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지난 3개월간의 통화내역을 살펴보니 부재중 전화를 포함해서 내가 받지 않았어도 별로 상관없었던 전화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전화번호가 없더라도 연락을 주고받는 데에 딱히 불편함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화번호 자체를 없애기는 쉽지가 않은데, 가장 큰 이유는 휴대폰번호가 본인인증의 가장 큰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공인인증서와 아이핀이라는 방식이 있기는 하지만,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전화번호는 개인을 인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게다가 카카오톡 같은 앱들은 기본적으로 휴대전화 번호를 기반으로 개인을 식별 및 인증하고 있고, 전화번호가 없으면 아예 가입조차 되지 않는다.
요즘 지구 전체를 떠돌아 다니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살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각 나라 모바일 인터넷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하루이틀 여행가는 것이라면 그냥 로밍을 해도 상관없겠지만 한달 이상 장기 여행은 현지 유심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현지 유심침을 구입해서 스마트폰에 삽입하게 되면 그동안 내가 사용중이던 한국 휴대폰 번호는 더이상 사용이 불가능해 진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중에는 기존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되고 또한 새로 받은 현지 전화번호도 딱히 쓸모가 없으므로 결국 한국번호랑 현지번호 둘다 버려지게 된다.
아직까지는 나같은 상황이 소수 여행자들의 이야기일 것이고, 또한 나같은 사용자를 위해 유심침을 2개 꽂을 수 있는 더블유심 제품들이 있긴 하지만, 앞으로 계속 새로운 통신수단이 나오고 점점 더 이 세상이 글로벌하게 엮이게 되면 현재의 국가번호로 나뉘는 전화번호 시스템은 의미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 지금도 .co.kr 도메인과 .com도메인을 나누는 것이 별 의미가 없고, 이메일 주소만으로는 그 사람의 국적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
한 개인이 특정 통신사의 번호에 묶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010 번호이동제인데 이제는 이 번호이동제도 조차도 또 다른 개인식별 시스템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싶다. 전세계 어딜가든 어떤 통신사를 사용하든 어떤 기기를 사용하든 바뀌지 않는 연락처를 이용해서 개인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게 되리라 본다. 물론 지금의 페이스북 주소(페이스북 메신저), 구글 아이디(구글 행아웃), 스카이프 아이디가 어느 정도 그 역할을 하고 있기는 하다. 실제로도 해외 연락망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
아무튼 이제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1998년 내 개인 전화번호(당시 PCS)를 받은지 20년도 채 안되어서 이제는 그 번호가 사라지는 날을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전화번호 종말의 시대가 하루아침에 다가오지는 않겠지만 서서히 사용용도는 줄어들 것이다. 마치 삐삐번호 없어지듯이 PC통신 아이디 없어지듯이 말이다. 앞으로 제작할 명함에는 전화번호를 넣지 않으려 한다. 어차피 이제 받지도 못할 번호일텐데…